30년 전 새내기 교사 시절 엄마구두 비닐봉지에 담아
‘선생님 선물’이라며 준 제자 지금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1988년, 덜컹거리는 시골 버스를 타고 초임지에 설렘으로 교직의 문을 두드린 지 30년을 넘기고 있다. 나와 함께 했던 제자들은 대학에 들어가고 취업을 했다. 세월의 흐름이 덧없다. 그리고 지금 관리자로 근무하는 이곳 위례유치원은 창문 넘어 남한산이 보인다. 멀리 남한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단발머리 작은 아이 윤미가 떠오른다. 기억 속의 윤미는 절로 미소를 띄게 하는 아이였다.
작은 남한산초등학교가 지금은 유명세를 타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때만 해도 그곳은 정말 작은 학교였다. 광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남한산초등학교에 두 번째 발령을 받았다. 전교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인원수에 선생님들도 6명이 전부인 아주 작은 학교였다. 가족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릴법한 이곳에서 나는 13명의 아이들과 함께 지냈다. 이젠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하나, 둘 나의 뇌리에서 스친다. 그곳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님들까지도 모두가 가족이었다.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가깝게 지내던 시절이었다. 요즘 같아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사택에 계셨던 부부 선생님, 갓 결혼한 새내기교사, 엄마 같은 선배 선생님, 그리고 20대 초반의 새내기인 나, 모두 함께 숙직실에서 점심을 먹고는 했다. 아침, 저녁 출퇴근 시간이 되면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 행복을 느끼고, 5월엔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눈을 만나게 되고, 7월에 녹음이 짙어 더이상 숨을 곳이 없는 그곳. 사계가 아름다운 그곳에서 늘 자연과 함께 즐겁게 지냈던 생각이 많이 나는 건 아마도 검정색 비닐봉지에 쌓인 빨간구두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빨강구두만 보면 저절로 피식하고 웃음이 나온다. 참으로 오랜만에 떠올려 보는 건, 지금도 내가 잊을 수 없는 윤미의 예쁜 모습이다. 남한산초등학교 학부모들은 거의 다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터라 아이들은 바쁜 엄마, 아빠보다 선생님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학부모들도 선생님을 믿고 따라주었다. 그분들은 교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맛있는 음식도 베풀어주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학부모들은 담임선생님의 생일이 되면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 초대해 생일잔치도 열어주었다. 지금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인데.
깊어가는 가을 내 생일이었다. 개울이 있고 함께 한 선생님들이 계셨고 그 동네에 사는 우리 반 아이들이 있었다. 모두들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돌이는 예쁘게 말린 꽈리 한 다발을 내게 주었다. 분위기는 무르익어 모두들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저기 멀리서 윤미가 걸어왔다. 윤미는 가지고 온 검정색 비닐봉지를 쑥스러워하면서 두 손을 모아 내게 건넸다.
“이게 뭐니?”
“선생님 선물이요.”
“선생님 선물? 뭘까? 고마워, 윤미야!”하고 그 비닐봉지를 푼 순간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건 구두였다. 그것도 빨간색 뾰족구두.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건 누군가 신던 구두였다. 아마 엄마 구두였으리라 짐작이 된다. 윤미는 내게 엄마의 빨간구두를 주고 싶었나 보다. 나중에 윤미 아빠의 전화로 안 사실이지만 윤미는 우리 선생님에게 제일 예쁜 선물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 신발을 몰래 비닐봉지 안에 넣어서 내게 주었다. 그날 난 세상 그 무엇보다 좋은, 아니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선물을 받았다. 잊을 수 없는 까만 비닐봉지 안의 빨간구두.
살포시 내게 다가와 속삭여주고 내 가슴속에 생생한 모습으로 행복한 웃음을 나에게 보내주었던 윤미가 오늘따라 많이 생각난다. 멀리 남한산을 보고 있노라니.
전수진 하남 위례유치원 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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