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잠시만 바라봐 주세요

가족상담을 하러 오는 부부와 가족들은 다양한 문제를 안고 온다.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신기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남편이 이야기할 때는 남편이 주장하는 이야기가 이치에 맞고 아내가 말할 때는 그것 또한 이치에 맞는 이야기만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이 말을 할 때는 가만히 들어주고 공감을 하게 된다. 아내가 말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몇 번씩 그렇게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남편과 아내의 화가 어느 정도 누그러진다. 집에서 대화할 때는 자신의 말만 옳고 상대는 틀렸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상담실에 와서는 상대가 하는 말을 듣고 눈맞춤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때야 그동안 상대방이 이야기했던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부부가 그동안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표현 대신에 부정적 정서를 표현하고 있었다는 것을.

부모 자녀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아버지가 아들과 갈등이 심해서 몇 년 동안 은둔형 외톨이로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아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이 안 된다며 상담실에 오게 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중학생 때 아들이 평소에 화장실에 들어가면 1시간 이상씩 나오질 않고 샤워기 물을 사용하는 것에 화가 난 아버지가 아들에게 심한 폭력을 가한 것이다. 아들은 그 일로 인해 마음의 문과 동시에 방문을 잠가버리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매일 같이 싸우는 부모님을 보면서 아들은 너무 우울하고 아팠다. 아들은 더 아프고 싶지 않아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가족은 서로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돌봄 없이 홀로 성장한 남편은 결혼 후 아내가 엄마처럼 자신을 돌봐주고 사랑해주기를 바랐다. 또 아들에게는 자신이 못했던 공부를 잘해주기를 바랐다. 아버지가 생각하는 좋은 아버지상은 공부를 시켜주고 가족을 굶기지 않는 것이었다. 아내와 아들은 아버지의 어린 시절의 아픔을 듣고 인간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아내 또한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남편과 아들에게 이야기하면서 그들에게 이해받게 되었다. 부부는 그동안 자신들 때문에 힘들었던 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가족 모두가 서로 눈을 보고 충분히 말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드디어 아들이 방문을 열고 나와서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 따뜻한 눈빛으로 서로 응시하고 진심으로 공감해 주었기 때문이다.

완벽한 부모와 가족은 없다. 가정마다 크고 작은 문제들은 늘 있기 마련이다. 문제를 따지기 전에 서로에게 잠깐이라도 자신의 생각을 멈추고 상대에게 온전히 집중해서 눈을 맞추고 들어주기만 해보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윤미정 尹가족치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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