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발안제가 국회에서 폐지됐다는 실망스러운 소식이다. 대의민주주의의 폐해를 국민의 손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여망을 국민의 뜻을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려고 거부한 것이다.
국민이 국회의원 선출에 참여하는 것은 뽑을 만한 훌륭한 후보가 있어서가 아니라 현 제도하에서 달리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법을 바꿔 국민이 원하는 제도하에서 국회의원을 뽑고 싶지만, 입법권을 틀어쥐고 꿈쩍도 하지 않는 국회의원들 탓에 어쩔 수 없이 현 제도하에서 움직이는 것뿐이다. 국민 손으로 직접 제도를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번 선출이 되고 나면 국민의 뜻을 저버리고 개인과 집단의 이익만을 대변해도 국민이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어, 국회의원들이 국민 위에 군림하며 권력 쟁취에만 몰두했었다. 그 결과는 늘 국가 분열로 이어지고 남북통일 및 국가경쟁력 고양에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국회의원을 선출만 할 수 있고 어떠한 잘못에도 이를 번복시킬 수 없는 제도 탓이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나 국회의원에 관한 법률 제정에 국민의 직접적인 관여가 필요한 이유이다.
똑같은 민주주의를 하고 있으면서도 나라마다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인다. 역사 속에서 승리를 써가는 나라와 패배를 써가는 나라가 있듯이, 다른 나라에서 바람직하게 작동하는 제도가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같은 제도가 있으면서 우리보다 안정적인 정치체제를 보이는 나라가 있고, 다른 제도가 있으면서 우리보다 좋은 정치체제를 보이는 나라가 있다. 한국의 정치는 그간 한 번도 좋은 결과를 내놓은 적이 없고 권력 쟁취를 위한 극한 대립만을 보여왔다. 내용은 팽개치고 선진 제도의 무늬만 가져와 운용했기 때문이다.
어느덧 국민도 이성을 잃어가듯 권력 싸움에 가세하여 국가보다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며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식의 이분법적인 사고 속에서 상대의 결점 잡기에 열을 올리며 국민 화합의 길을 외면하고 있다. 권불십년이라고 정권이 바뀌면 다시 새로운 인적 청산과 강한 저항이 반복되며 바람 잘 날 없는 국가를 반복한다. 북한이나 일본과의 화해가 아니라 우리 국민 간의 화해가 먼저인 상황이다.
바른 국민의 뜻은 받들고 그릇된 국민의 뜻은 거부하며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가 펼쳐지려면 국회의원이 멸사봉공의 자세로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일하는 자리로 거듭나야 한다.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국민을 섬기며 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간의 국회의원들이 보인 모습은 국민의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을 탐닉하며 한번 맛본 권력 유지를 위한 집착 속에서 결국은 국가나 국민보다 본인의 미래를 위한 행보뿐이었다. 선출되면 국민의 뜻에 따르지 않아도 국민을 대표하는 권한을 무한히 누릴 수 있는 대의민주주의의 맹점 탓이라 하겠다. 제도를 바꿔내지 않으면 한국의 정치풍토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나 국민발안제 등이 필요한 이유이다.
정치가들이 국민의 명령에 따를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민주주의의 구현일 것이다. 국회의원이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고 민의를 받들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하여, 한국의 정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자는 것이 대의민주제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제의 도입이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회의 입법권에 대해 국민이 직접 나설 수 있게 하는 개헌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모세종 인하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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