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 유감

20년전 장학사 시절부터 함께한 애마
아버지와 병원길 등 가족과 희노애락
폐차로 긴 추억까지 잊혀질까 두려워
나의 사랑하는 차 카렌스 고마웠다…

▲ 용인 죽전고 교장

며칠 전 20년을 넘게 탔던 차를 폐차업자에게 넘겨주었다. 아직은 주행하는 데에 별문제가 없는 차였기에 폐차장으로 보내는 마음이 섭섭했다. 견인차에 매달려 가는 모습을 보자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경기□□마 □□86.

나도 어느덧 환갑을 넘긴 나이. 생각해보니 꽤 긴 세월을 차와 함께 보냈다. 대개 차를 5년 정도 탄 후 새 차로 바꾸는 게 흔한 경우인데, 이에 비하면 아주 오래 탔다고 할 수 있다. 문득 20년을 함께 했던 추억들이 밀려왔다.

처음에 1천400여만원의 거금(?)을 들여 산 차였다. 20년 전 교사에서 전직해 지역교육청의 장학사 생활을 새 차와 함께 시작했다. 이 차로 먼 거리에 있는 교육청으로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다녀야 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출장으로 지역의 학교는 물론 전국 곳곳을 찾아다녔다. 긴 장학사 생활을 마친 후 고등학교 교감 시절도, 승진 후 교장과 교육청의 장학관 생활, 그 이후 두 학교의 교장 시절을 이 차와 함께 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는 부모님과 함께 친척 집 방문과 가족 여행을 하기도 했다. LPG 연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연료비도 경제적이었고 대기 환경에도 도움이 됐다. 게다가 가끔 먼 거리 자전거 타기를 했던 내게 차 뒷공간의 여유는 자전거를 싣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몇 년 전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병원을 출입할 때도 이 차를 이용했다. 아버지는 병원을 오가며 2년여를 버티셨지만 결국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셨다. 어느 날 담당 의사는 내게 아버지가 한 달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 아버지 모르게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차를 몰고 왔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다른 새 차가 있어 아내는 자주 폐차를 종용했는데 선뜻 폐차하지 못했던 것은 이러 저러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가 폐차를 종용할 때마다 나는 연료도 다른 차보다 덜 들고, 아직은 멀쩡해 자전거를 싣고 다니기에 좋은 차라고 둘러대며 폐차 종용을 피하곤 했다.

폐차 당일 차를 세차하고 차 안을 깨끗이 정리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계신 곳을 찾아 아버지께 마지막 작별을 고하고 폐차장으로 보낼 마음이었다. 그러나 밀려오는 바쁜 일들로 인해 계획대로 이를 실행하지 못하고 차를 폐차장으로 보내고 말았다.

폐차는 내가 한 일이었지만 막상 폐차하고 나니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폐차 말소 확인증을 받고 나서야 폐차했다는 것이 비로소 실감이 났다.

폐차로 인해 차와 함께 했던 추억들까지 잊혀질까 두렵다. 긴 세월을 함께 했던 정든 내 차야 잘 가거라. 그동안 고마웠다. 20년을 넘게 함께 했던 나의 사랑하는 차 카렌스. 감사하다. 내 차야 안녕!

김유성 용인 죽전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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