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겹게 불의에 맞서던 진보
윤미향 논란, 권력 진보 부패
거짓말·버티기, 그대로 흉내
그는 늘 오토바이를 탔다. 덜덜대는 소형 원동기였다. 그 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여름엔 더 했다. 땀에 밴 티셔츠 차림이었다. 광교산 보리밥집에서였나. 기억이 맞다면 그날 이런 말을 했다. “누가 오토바이 기름 값 5천원만 지원해주면 좋겠다.” 수원경실련 사무국장이다. 지역 진보의 대표 얼굴이다. 그가 한 말이다. 전업(專業) 진보의 고됨이 묻어났다. 거기 현역 국회의원도 있었다. 일부러 지른 걸로도 보였다. 그리곤 아마 불쑥 일어나 갔던 것 같다.
그가 ‘노민호’임은 중하지 않다. 90년대 시민운동가가 그랬다. 범인(凡人)의 삶은 포기해야 했다. 고정 수입을 기대하면 안 됐다. 아파트 부금은 꿈도 꾸면 안됐다. 어쩌다 기웃대는 금수저도 있긴 했다. 하지만, 오래 못 가고 사라졌다. 그들에 어울리는 삶이 그랬다. ‘덜덜대는 원동기’가 딱 그거였다. 90년대 시민운동, 그건 미쳐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살면서도 당당히 외쳤다. 권력 물러나라고 대놓고 말했다. 없는 이, 억울한 이들에게 더 없는 언덕이었다.
그 진보가 달라졌다. 권력의 중심으로 옮아갔다. 더는 문밖의 견제자가 아니다. 문 안의 집행자다. 진보 법관은 대법원장이 됐다. 시민 운동가는 인권위원장이 됐다. 각료 선임의 진보 경력은 필수다. 진보의 흔적이라도 있어야 뽑힌다. 정치권력은 더하다. 진보 경력이 곧 공천 조건이다. 비례대표도 그 순서대로다. 1번부터 아래까지 곳곳이 진보다. 윤미향씨도 그렇게 뽑혔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다. 안정적인 7번을 받았다. 의원배지를 달게 됐다.
이런 때 잡음이 생겼다. 이용수 할머니가 시작했다. 기부금 사용처에 의혹을 제기했다. 92세 위안부 출신 당사자의 폭로다. 사회에 던진 충격이 컸다. 언론이 넙죽 받아 의혹을 키웠다. 이제 의혹은 정의연 전체로 번졌다. 전부 사실인 거 같지는 않다. 후원금을 착복했을까. 그렇지 않을 거다. 할머니들에게 후원금 모두를 줘야 했을까. 그런 것도 아니다. 별일 아닌 것도 있다. 안성 쉼터를 불법 증ㆍ개축했을까. 시골집 창고가 정의연 기본 정신과 무슨 상관인가.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의혹을 대하는 윤 당선인의 자세다. 스스로 권력이 됐음을 모르고 있다. 견제받는 위치에 왔음을 모르고 있다. 내놓는 해명마다 거짓말이다. 최소한 결과적으로 거짓말이다. 기존 아파트 팔아 새 아파트 샀다고 했다. 등기부 등본의 거래일자가 어긋났다. 다른 돈 마련해 아파트 샀다며 바꿨다. 가족에 특혜 준 적 없다고 했다. 아버지의 쉼터 관리 비용이 확인됐다. 심심한 사과를 한다고 바꿨다. 그러면서도 토는 단다. ‘사퇴는 생각 않는다.’
수원에 있는 남편 사업은 생략하자. 미국에 있는 딸 유학도 넘어가자. 아버지 문제만도 심각하다. 아버지가 쉼터 관리를 맡았다. 누군가에겐 너무도 소중했을 일자리다. 7천580만원을 대가로 받았다. 웬만한 노인들 여생 살 돈이다. 모든 게 딸이 대표라서 가능했다. 대표 아니었다면 취하지 못했을 이익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 수사가 취업 비리였다. 줄줄이 끌려갔다. 누구 하나 고개 들지 못했다. 하물며 이건 항일(抗日) 공금이다. 위안부 할머니 후원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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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발뺌한다→확인되면 사과한다→사퇴는 거부한다’. 많이 익숙한 흐름이다. 보수 부패가 그랬다. 10년 또는 20년 전이다. 그때 진보는 문밖에서 외쳤다. ‘인정하라’, ‘사과하라’, ‘사퇴하라’. 지금 그 패턴이 재연되고 있다. 이번에는 문 안으로 들어온 진보에 의해서다. 하는 짓은 그 옛날 패턴 그대로다. ‘의혹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확인된 사실은 사과한다→당선인 사퇴는 절대 없다.’ 기억하건대 그 옛날 패턴의 마지막은 이랬다. ‘결국엔 쫓겨난다.’
그때 언론은 ‘노민호’로 충분했다. 모든 기사는 ‘노민호’로 마무리됐다. “…이에 대해 수원 경실련 노민호 국장은….” 이 멘트가 곧 정당성이었다. 오늘 우리는 부패한 진보를 보고 있다. 그래서 20년 전 배곯던 진보를 추억하게 된다.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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