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는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삶이 있다. 특히 청소년들은 영화를 통해 세상을 보고, 배우고, 꿈을 꾼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온라인 개학에 이어 순차적 등교 개학으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학생들은 요즘 어떤 영화를 보고 있을까. 학생들은 코로나 속에 영화관에 가기 어렵지만 집에서 영화를 보면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학생들이 들려주는 영화이야기를 정리해봤다. 편집자 주
왜 ‘조커’에 열광하는가
2019년 개봉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영화 ‘조커’는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고 한국에서도 이슈가 됐다. ‘조커’가 흥행할 때에 우리 반 친구들도 시도 때도 없이 영화 속 조커의 춤을 따라 추고, 조커의 웃는 모습을 따라 했다.
조커는 민중들을 괴롭히고 악한 짓을 일삼는 악당이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관객들은 어느새 마음속으로 조커의 살인이 합당하다고 생각하고 심지어는 어느샌가 그의 행위를 응원하고 있다. 왜 이렇게 현대 사람들이 조커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공감하는 것일까?
주인공 ‘아서’는 코미디언이 돼 세상에 웃음을 전해주고 싶다는 밝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소중한 꿈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들로 인해 주변 사람들의 수많은 오해와 조롱을 받는다.
아서는 결국 이런 각박한 환경들을 견뎌내지 못하고 총을 들게 된다. 물론 아서가 저지른 범죄가 옳고 타당하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가 조커의 살인에 마음 속으로 동조하고 있었다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비극적 현실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누군가 아서를 때리는 사람들을 말리고 그를 구해주었다면, 차갑지 않은 눈빛으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면, 아서가 살인까지 저지르지는 않았으리라. 그가 악당이 되지 않았으리라.
우리는 주위를 따뜻한 눈길로 살피고 편견 없이 남들을 대해야 한다. 모두가 이기적인 생각들로 침묵하고 기피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커는 태어난다. 불공정이 없도록, 불평등이 없도록, 특혜와 이득이 어느 한쪽으로만 쏠리고 모이지 않도록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 어딘가에 곰팡이가 슬고 있지는 않은지 들춰 살펴봐야 한다. 현실에서는 진짜 조커가 탄생하지 않도록 말이다.
강혜빈(계원예술고)
참혹한 전쟁이 남기는 것
영화 ‘1917’은 21세기 가장 뛰어난 전쟁 영화 중 한편으로 자리매김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우선 이 영화는 기술적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1917’의 기술적 부문은 그 자체가 예술이라는 커다란 범주를 이끄는 중심인 듯 혁신적이며 완성도가 높다. 1시간59분이라는 상영시간 내내 카메라를 끊거나 편집하지 않고(실제로는 편집점을 가려 여러 번 편집해 촬영하긴 했지만) 하나의 쇼트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원 컨티뉴어스 샷’ 촬영기법을 통해 이 영화는 관객들을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의 전쟁터 한복판에 놓이게 한다.
‘1917’의 탁월함에는 오로지 기술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 촬영 못지않은 큰 몫을 하는 것은 바로 영화의 플롯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고군분투라는 간단하고 명확한 플롯은 영화의 기승전결에 전혀 걸림돌을 만들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이 영화에는 뜨겁고도 간절한 감정과 감동이 있다. 1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부조리와 비극에 맞선 한 군인의 여정 끝에 남는 감정은 곧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뜻하지 않았던 그의 선발, 예상치 못한 동료의 죽음, 목적지에 도착한 후 참호에서의 질주도, 그의 임무가 일궈낸 성과도 마침내 하나의 것으로 귀결돼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결국 이 영화가 전달하는 감동의 전신은 결국 한 인간이 내딛는 발자국의 간절함과 그 후 밀려오는 무엇인지 모를 정서이자 감정이다. 어쩌면 이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끊임없는 찬사에도 후대에 더 훌륭한 전쟁 영화가 우릴 맞이해도, 이 영화가 일궈낸 그 탁월한 성취와 영화적 논제에 대한 흥미로운 해답은 여전히 그 시대를 맴돌 것이다.
김경중(서울 삼육고)
꿈은 포기하지 않는 자의 몫
애니메이션 영화 ‘라따뚜이’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파리의 한 생쥐가 주인공이다. 절대미각, 빠른 손놀림, 끓어 넘치는 열정의 소유자인 생쥐 ‘레미’가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를 꿈꾸며 견습생 ‘링귀니’와 함께 식당에서 아슬아슬하게 공존해가는 모험담을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가장 큰 테마는 남의 기대에 끌려다니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주방 퇴치대상 1호인 생쥐가 자신이 꿈꾸는 요리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신기하고 멋지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장애물과 고난이 있고 그것은 마치 우리들이 마주하는 모습들과도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우리들은 결국 포기하고 힘들어하며 꿈꾸는 것을 이루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 같다. 레미와 같이 꿈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를 보며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던 것 같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과 같이 레미와 링귀니도 그렇고 영화를 보는 우리들에게도 꿈이 있지만 한계나 문제점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것이 생길 수도 있고 생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생긴다고 해서 이상한 것은 아니다. 당연한 일이고 지나쳐야 할 관문이기도 할 것이다.
대부분 관문을 거치는 일을 꺼리고 용기 있게 도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레미는 자신감을 갖고 포기하지 않고 요리를 하려고 한다. 사람들에게 맞아 죽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우리도 용기와 자신감을 갖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황재형(용인 성복고)
‘본능 vs 이기심’ 끝없는 투쟁
영화 ‘부산행’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대한민국에 긴급재난경보령이 선포된 가운데 방역에 성공했다는 도시, 부산으로 안전하게 떠나길 바라는 생존자들이 KTX열차를 주배경으로 해 극한의 사투를 다룬 영화다.
최근 ‘부산행’을 다시 보며 흥미로운 점을 몇 가지 발견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전세계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라는 수식이 자연스러운 현실, ‘부산행’에서 다루는 상황, 소재 등이 현실과 밀접하다는 것이다.
영화 속 용석(김의성 분)은 역무원이며 역의 상황, 열차의 운행에 관해 잘 알고 있다는 것 하나로 그들이 탑승한 열차의 담당인 동료 역무원으로부터 무전기를 빼앗아 기장과 직속으로 소통하며 상황을 지휘한다. 15호 칸에 함께 있던 생존자들은 그의 말을 신뢰하게 되고 그의 큰 액션은 곧 ‘일리 있는’ 말과 행동이 된다.
인간의 군중심리와 이기심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다. 석우(공유 분) 역시 대전역에서는 딸과 함께 본인만 생존하려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생존하고자 하는 본능을 ‘이기심’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극한의 상황을 가정하고 그에 따른 인간의 본성과 심리에 관해 논하는 문제는 쉽게 정리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 ‘부산행’에서 대조되는 두 입장-15호 칸 생존자들과 석우(공유 분) 일행-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것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본성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그 말은 곧,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같은 인간으로서 서로를 배척하기보다는 최선의 절충점을 찾아 평화적인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또다른 ‘능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다운(안양예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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