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허공 수도원

언제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나무 위 까치집

저런 곳에 누가 올까 싶지만

그렇다고 문을 닫는 일도 없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수도원이라

바람이 쉬었다 가고 햇볕이 머물다 갈 뿐

작은 새들의 인기척 하나 없어

외딴 수도원이 되어 간다

새끼들이 까고 나온

동그란 껍질의 온기가 남아있는지

나무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커다란 대문을 하늘로 내고서는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는다

바람을 타고 순례하는 나뭇잎들이

문 앞을 기웃거려도

아무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세상을 뒤란으로 삼은 수도원

지나가는 행인이 고개 들고 쳐다봐도

무슨 수행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

고개만 아픈데

긴 원행을 다녀온 수행자는

세상을 편안하게 내려다 본다

이종섶

경남 하동출생.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시 당선. 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등 수상. 시집 『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 외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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