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된 지 75년이 지난 지금도 일제 침략의 잔재를 청산하고 과오를 바로잡겠다며 사회활동에 전념하는 자들이 있다. 이전 정부의 잘못을 조사하여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 나아가 가해자의 처벌을 요구하며 활동하는 단체, 노사관계에서부터 여성, 어린이 등의 약자, 나아가 동물의 삶에 대해서도 지적하며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나서는 수많은 단체가 있다. 이제는 학창시절의 인간관계도 밝혀보겠다며 나서는 자들이 있으니, 언제가 조상의 잘잘못도 따져보자는 시기가 올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잘못을 세상에 알리고 그 피해자들을 돕는 활동은 중요하다. 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나서는 행위는 정의의 실천이요 용기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많은 시민도 존중한다.
어느덧 한국 사회가 부유해져 다소의 기부나 봉사에 인색해하지 않아, 각종 사회단체에 도움의 손길도 끊이지 않는다. TV의 공익광고라며 유명 연예인을 등장시켜 차마 보기 불편한 장면을 연출하며 후원을 요구하는 광고도 부쩍 늘었다.
명분만 잘 만들어 내면 사회단체를 결성하여 뜻있는 자들의 후원을 받아 어엿한 활동을 전개하며 일터 삼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이다. 분명 현대사회의 발전에 시민들의 의식이나 사회활동의 역할은 지대하여, 그 덕에 부조리한 사회가 일정 부분 개선되고 발전되어 왔다. 하지만, 어느덧 각 단체가 사회에 던지는 명분과 행동이 진정성이 있는 것이고, 시대의 변화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에 대해 냉정히 생각해 볼 시점이 온 듯하다.
피해나 불이익에 신음해도 개인의 힘은 미약하여 이를 사회에 알리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거창한 명분이 아니라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정의감에서 출범한 사회단체에 국민도 성원을 보내왔다. 작은 출발이 거대한 사회단체를 이뤄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단체설립에는 목표가 있을 터, 활동이 궤도에 올라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판단된다면 그 시점에서 역할의 종료를 선언하고 퇴장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아무리 좋은 활동이라도 충분히 다한 역할을 지속해 나가려 한다면 국민에게 피로감을 주며 그간의 공과마저 왜곡시킬 수 있다. 많은 국민이 사회 분열을 감수하며 단체에 끌려가는 상황을 연출해서는 안 된다. 단체의 사업이 늘 순항할 듯 보여도 정의에 반하는 한순간의 실수에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사회단체는 불의에 경종을 불러일으켜 사회가 바르게 기능 하도록 하는 토대를 열면 되는 일로, 완전무결한 해결을 얻어낼 때까지 끝까지 가겠다는 태도는 적절하지 않다. 피해단체를 위해 많은 국민이 아낌없는 성원을 보여 왔다면, 단체들도 일정한 시기가 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시점에서, 그간의 성원에 고맙다며 머리 숙이고, 더 이상 자신들의 일로 국민에게 심려를 끼칠 수 없다는 겸허한 자세를 보이며, 모든 것은 가슴에 담고 일을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적당한 선에서 목적달성을 선언하고 조용히 물러나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야 국민도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정의연이라는 단체의 활동은 커다란 성과를 이뤘다. 위안부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일본의 만행을 충분히 꾸짖었다. 더 이상 피해자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인지 돌아보고 이제는 정부에게 국제적 해결이라는 과제를 안겨주고 그간의 업적을 유종의 미로 장식할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아직도 불공평하고 부조리한 사회가 지속되고 있고, 이를 사회에 알리고 개선해 나가기 위해 시작해야 할 사회운동은 많지만, 늘 역할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활동이 고이는 일 없이 순환되는 구조 속에서 작동되기를 기대한다.
모세종 인하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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