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수사심의委 목적에 ‘사회적 약자 보호’ 없다

기소권 분석 통한 검찰권 견제

박용진 의원이 말했다. “수사심의위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공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설치 목적을 설명한 거다. 이 기준으로 논리를 폈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 그룹 총수다. 돈이 제일 많은 기업인이다. 조직의 권력도 대단하다. 뭐로 봐도 사회적 강자다. 수사심의위원회가 챙길 대상이 아니다. 유리하게 판단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목적에 반했다. 결론은 이렇게 냈다. “법적 상식에 반한다.”

옳지 않다. 전제부터 틀렸다. 위원회는 2018년 1월 출범했다. 검찰의 기소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다. 그 목적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운영지침 제1조에 박혀 있다. ‘검찰수사의 절차 및 결과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해 설립한다’. 사건 기준도 정했다.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는 사건’ㆍ‘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이다. 신청인 자격도 ‘사건 당사자’로 해놨다. 거기 어디에도 ‘사회적 약자 보호’란 표현은 없다.

결론도 빗나갔다. 상식(常識)의 의미는 이렇다.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법적 상식이라면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법적 지식’이다. 박 의원은 예단을 깔고 있다. ‘이재용은 사회적 강자다. 고로 기소해야 한다.’ 그러면서 이 결론을 ‘사람들도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법적 지식’이라고 단정한다. 그러다 보니 ‘불기소 결정=법적 몰상식’이라 했다. 틀린 전제가 이끈 틀린 결론이다.

형사 처벌은 행위로 판단한다. 이 판단의 기초는 법전(法典)이다. 이 법전과의 연결은 법 해석이다. 이 법 해석에 범죄구성요건(犯罪構成要件), 가벌성(可罰性) 등이 따른다. 사회적 강ㆍ약자는 여기 어디에도 없다. 있어서도 안 될 기준이다. 박 의원은 지금 그런 논리를 선창(先唱)하고 있다. 이재용을 풀어준 것은 잘못이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는 ‘이재용은 사회적 강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말로 비튼 묘한 왜곡이다.

영향력 큰 국회의원이다. 분별 있는 논평으로 정평 있다. 언론에는 ‘믿고 쓰는 논평’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여권 인사 여럿이 말을 했다. 그중에 언론이 선택한 건 박 의원 말이다. 유독 크게 부각시켰다. 여지없이 큰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여론이 그의 주장을 그대로 따라간다. 사회적 약자 보호가 위원회 목적이라고 믿는다. 이 부회장 불기소는 이런 목적을 위반했다고 믿는다. ‘기소불가’ 위원은 삼성 부역자라고 믿는다.

이쯤 되니 따르는 게 있다. 신상ㆍ과거 털기다. 첫 제물은 김병연 교수(건국대)다. 이 부회장 불기소 의견을 낸 위원이다. 그가 했던 과거 발언이 도배됐다. “합리적으로 결정한 것이면 문제없다”(MBN), “법을 위반했다고 볼 의심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시장경제신문)…. 성균관대 이 모교수도 도마 위에 올랐다. 성대가 삼성 재단이라는 게 이유다. 얼마나 많은 위원이 더 털려야 할지 모른다. 이런 위원회, 무서워서 하겠나.

제도 개선 얘기까지 나온다. 들어보니 참 부질없는 소리다. 위원의 전문지식 부족이 문제라는데…, 애초에 검찰 밖 의견을 듣겠다는 제도 아니었나. 위원의 이념적 편향성이 문제라는데…, 어차피 의견 내면 편 가를 텐데 몰리지 않을 위원이 있나. 위원과 피의자의 유착이 문제라는데…, 이게 왜 제도의 문젠가. 서로 짰다면 구속해서 처벌하면 끝날 일이다. 공연히 제도 탓할 필요 없다. 둘 거면 따르면 되고, 따르지 않을 거면 없애면 된다.

노무현, 박근혜, 한명숙, 조국…. 누군가의 눈엔 핍박받는 약자의 모습이었다. 앞으로 일어날 모든 사건…. 역시 누군가의 눈엔 핍박받는 약자일 거다. 많은 수사심의위원회가 열릴 거다. 그때마다 사회적 약자인지 따질 건가. 가능하지도 않지만 가능해서도 안 된다. 수사심의위원회 목적은 검찰 견제다. 검찰 힘의 출발은 기소권이다. 이 기소권을 견제하는 것 역시 기소 분석이다. 이 분석대로 의견 내면 그게 끝이다.

여기에 왜 ‘사회적 약자’를 대입하나. 혹시 그 말의 다른 뜻이 ‘내 편 만들기’라서 이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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