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풍도의 비밀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개화기인 19세기 말, 조선국의 지배권을 놓고 벌어진 청나라와 일본 간의 전쟁에 대하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경기만의 작은 섬 풍도(豊島)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행정구역상 경기도 안산시인 풍도는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에서 여객선으로 약 1시간 30분 소요되는 거리에 있다. 봄이면 복수초, 바람꽃, 노루귀, 제비꽃 등 희귀한 야생화들이 만발하여 사진작가들에게는 천연갤러리로 유명하다.

그러한 풍도가 근대사의 한 축을 흔들었던 청일전쟁의 개전지였다. 당시 조선국을 놓고 각축을 벌이던 청나라와 일본이 1894년 7월, 남양군(현재의 화성시) 풍도 앞바다에서 일본군의 기습공격으로 청일전쟁이 시작됐다.

그 무렵 조선국은 무능한 왕권과 부패한 관료들의 가렴주구(苛斂誅求), 탐관오리를 등에 업은 대지주들의 수탈과 압제로 농민들의 삶은 핍박과 곤경의 나날이었다. 이에 분노한 농민들이 동학 교도들과 힘을 합쳐 호남 고부 지방에서 갑오농민전쟁을 일으켰으며, 감영군을 격파하는 등 전주지방까지 점령했다. 전황이 불리해지자 조정(朝廷)에서는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했다.

사태가 청나라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자 일본은 조선국에 산재한 일본 공관과 거류민 보호를 이유로 신무기로 무장된 해군과 육군을 동원하여 서울과 인천 등 정치적 군사적 요충지를 장악했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국의 내정개혁을 구실로 7월23일 무력으로 경복궁을 점령하고 흥선대원군을 앞세운 친일 정권을 수립했다.

이후 7월25일 선전포고도 없이 풍도 앞바다에 정박 중인 청나라의 군함을 격파, 청일 전쟁이 일어났으나 이듬해인 1895년 4월, 전쟁이 일어난 지 8개월 만에 일본으로 승리로 종전됨으로써 일본에 동아시아 제국주의 시대의 빌미를 제공한 사건이 되었다. 어쩌면 풍도해전은 조선국 앞마당에서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국을 먹이 삼아 침략전쟁을 일으킨 치욕의 현장이지만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아픔의 현장이기도 하다.

경기도 최서단에 있는 풍도는 바다면적의 확장적 의미에서 볼 때 경기도가 관할하는 바다의 최대 지주이자 선봉대이다. 그러나 지금의 풍도는 야생화의 무분별한 채취로 자연이 훼손되고 어획량 감소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관광업의 불황으로 섬 주민들은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이지만 섬주민의 정서와 연고는 옹진군, 즉 인천광역시에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경기도가 좀 더 세심하게 접근, 그들에게 관심을 두고 보듬어 주어야 한다. 역사의 큰 풍파에 휩쓸렸던 풍도의 비밀스런 역사가 관광 상품화하여 또 하나의 풍요로운 경기도 바다로 거듭나기를 기원해 본다.

정겸 시인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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