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쓰레기를 주우며

어느덧 100여일이 지났다. 매일 새벽, 집 주변(민락천 변, 의정부시)에서 쓰레기 줍는 봉사를 하고 있다. 오전 5시 반부터 시작되는 쓰레기 줍기는 매립쓰레기와 재활용쓰레기 20 봉투 각각 2개씩 채우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매일 두 시간씩, 양손 가득.

이것도 코로나19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올봄에는 유독 민락천 산책로에 마스크, 물티슈가 많이 버려져 있었다. 이를 치워보자는 마음으로, 새벽에 운동 삼아 해본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된 쓰레기 줍기는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생활의 리듬을 바꾸는 기분 좋은 경험이 되어가고 있다. 매일 이른 새벽 온전히 하루를 시작한다는 뿌듯함, 자신과의 깊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되는 즐거움이 내 삶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여기저기 수북하게 쌓여 있는 쓰레기를 보며, 혼자 주워서 깨끗한 산책길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함에 주저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계속 이어진 쓰레기 줍기에 이제는 깨끗한 산책길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산책길에 쓰레기가 없을 수는 없다. 며칠 전 지나가며 주웠던 산책길을 다시 가보면, 새로 버려진 쓰레기가 떨어져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 묵은 쓰레기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루하루 후회와 아쉬움의 반복 속에서 탁해진 마음을 닦고 또 닦아가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마치 조금씩 조금씩 깨끗해져 가는 산책길처럼 말이다.

문득 ‘언어의 온도’(이기주)에서 보았던 글귀가 생각난다. “지금도 나쁘진 않지만, 앞으로 더 좋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순간 우리는 살아가는 동력을 얻는다.”

매일 새벽에 쓰레기를 줍기 시작하면서 언제부턴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 조금씩 깨끗해지는 산책길처럼 우리의 삶도 그러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인지, 살면서 갖게 되는 욕심들을 내려놓게 되는 느낌이다. 이런저런 복잡했던 생각들도 단순해져 가는 것 같다. 결국 삶의 행복은 사소한 일상의 실천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김동근 경기도 前 행정2부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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