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당동벌이

코로나19로 동네 경로당이 문을 닫자 어르신들은 더위를 피해 마을 어귀에 있는 느티나무 그늘을 찾아 이런저런 세상사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고 있다. 그 중 한 어르신이 하는 얘기가 아직도 뇌리 속에서 맴돌고 있다.

“요즘 텔레비전 볼 때마다 볼썽사나운 뉴스만 보게 돼, 나라 살림 잘해달라고 국회의원 뽑아 줬는데 패거리로 나누어 싸움질만 하니 내가 또 속은 거야. 선거 때마다 감언이설로 표 동냥하더니 그놈의 패거리 정치는 70년대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게 없어 몇 년 전에는 박 뭐시기 사모, 노 뭐시기 사모가 난리 염병 치더니, 요즘은 여당 야당 패를 갈라 싸우는 것도 모자라 같은 당끼리 문 뭐시기 빠, 조 뭐시기 빠, 빠들이 정치를 하네”하며 혀를 내찬다.

국민의 눈높이는 무시한 채 빠들이 포털사이트를 장악하여 댓글로 분위기를 주도하고 일부 언론들은 사실 확인 없이 그것을 받아 적으며 기사화하고, 정치인들은 그것이 국민 다수의 여론인 양 호도하며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

사실 어르신들 이야기는 허튼소리가 아니다. 뉴스에 등장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보아라, 내가 소속된 정당이 아니면 모두가 적군이다.

‘후한서’의 작자 ‘범엽’의 당동벌이(黨同伐異)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 말은 사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 같은 정파끼리 편을 만들어 다른 무리의 정파는 무조건 배격한다는 뜻이다. 즉, 타 정파에서 국민을 위하여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 놓아도 무조건 배타하며 부결시키고 같은 정파에서 설사 그릇된 정책을 내놓아도 무조건 찬성하며 통과시키는 형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중국 후한(後漢)시기의 역대 황제는 공교롭게도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 따라서 황태후(皇太后)가 섭정(攝政)하는 과정에서 선비집단과 외척들이 조정을 장악했다. 이후 성인이 된 황제는 자신의 친위 세력을 키우기 위해 환관 세력을 아군으로 만들었다. 환관들은 업무 능력은 떨어졌지만 결속력이 강하고, 신분상승의 욕구, 자신들의 이해에 민감해서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게 됐다.

 

이런 결과 선비 집단과 외척이 한 정파가 되고, 환관 세력이 한 정파가 되어 권력 다툼을 벌이게 되었는데 각 정파는 정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 다른 집단을 무조건 배격했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예로부터 ‘군이부당(群而不黨)“이라 했다. 무리를 이루지만 당파를 만들지 않고. 많은 사람과 가까이 지내지만 사사로운 개인의 정으로 누구 편을 들거나 한 무리가 되지 않음이 곧 백성을 진정으로 위하는 위정자이다.

정겸 시인·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黨同伐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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