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마스크 방학

강현숙 사회부 차장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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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곧장 집으로 가지 말고코스모스 갸웃갸웃 얼굴 내밀며 손 흔들거든너희도 코스모스에게 손 흔들어주며 가거라쉴 곳 만들어주는 나무들한번씩 안아주고 가라머리털 하얗게 셀 때까지 아무도 벗해주지 않던강아지풀 말동무해 주다 가거라. 도종환 시인의 시 ‘종례시간’ 일부다. 시처럼 학교 끝나면 집으로 가는 길에 ‘코스모스에게 손 흔들어주고’, ‘나무들 한 번씩 안아주고’ 아이들이 자연을 벗삼아서 등교도 하고, 하교도 하는 그런 아름다운 곳에서 즐거운 생활을 했으면 좋겠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하다. 친구들과 거리두기를 해야 하고 수업 때 모둠활동도 사라졌다. 종일 마스크를 쓴 채 공부하고 쉬는시간에도 대화 없이 화장실만 다녀와서 혼자 책을 보거나 잠을 잤다. 밥도 혼자 먹었다. 이렇게 1학기가 지나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선생님들이 미칠 때쯤 방학을 하고 엄마들이 미칠 때쯤 개학을 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일선 학교들은 이번주부터 여름방학에 들어간다. 코로나19로 등교 수업이 미뤄져 여름방학은 대부분 2주가량이다. 방학 기간이 짧다 보니 다른 일정을 잡기보다는 집에서 아이들 공부를 직접 가르치거나 소소하게 ‘방콕’ 생활을 이어가겠다는 학부모들이 많다. 영어교육 전문기업 윤선생이 미성년 자녀를 둔 학부모 6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3.7%가 ‘올해 여름방학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고 답했다. 계획을 세우지 못한 이유(복수응답)에는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여행, 체험학습 등 외부활동이 어려워서’(79.9%)가 가장 많았다. 코로나19 때문에 올 여름방학은 ‘태국 방콕’ 대신 ‘집에서 방콕’이 대세다.

▶‘방학인 듯 방학 아닌, 방학 같은’ 방학이다. 예전 같으면 바다와 계곡을 떠올리며 짐짓 들뜨고 설레었을 여름방학이지만 올해는 그런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다. 초등학생들은 심드렁한 얼굴로 올해 여름방학을 ‘그저 조금 긴 주말’이라고 하고 중·고등학생들은 ‘한 주가 더 연장된 원격수업 기간일 뿐’이라며 서운함을 토로한다. 고3 수험생들은 수시와 수능 준비로 마음이 더 바빠졌다. 올해는 마스크 방학이라 비록 2주에 불과하지만 각자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시간의 가치와 의미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강현숙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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