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박물관을 방문하면 입구 맞은편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를 보게 된다. 세 인물이 눈에 띈다. 그 가운데 재상을 지낸 잠곡 김육의 모습에 뜻밖이라 여기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실학자 하면 초야의 선비만 떠올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공(事功),’ 즉 실제 일에서 실제적 성과를 거두는 것이 실학의 본령이라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다. 김육(1580~1658)은 관료로서 여러 치적이 있지만, 대표적인 것이 ‘대동법(大同法)’이다.
대동법은 이원익이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한 정책이었다.
이 제도는 경기도에 이어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에 확대되었는데, 강원도를 제외하고는 흐지부지되었다.
이해관계자의 반발이 작용했던 것이다. 개혁엔 저항이 있기 마련이다.
대동법은 종래의 공물제도를 개혁한 것으로 두 가지 변화가 핵심이다. 첫째, 지역 특산물을 거두는 과정에서 중간자의 농간이 있었는데, 물건 대신 쌀을 거둠으로써 이를 배제했다. 둘째, 가구당 부과하던 것을 보유한 경작지 면적에 따라 부과함으로써 실질적 조세 평등을 도모한 것이다. 결국 대동법은 모두 함께 사는 ‘대동사회’를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김육은 대동법을 충청도에 확대 시행하는 것을 추진했다. 백성을 위해 일하는 관료로서의 책임감과 제도적 소신의 소산이었다. 그가 직접 쓴 ‘호서대동절목’ 서문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대동법은 제도를 합리화함으로써 백성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국가 재정의 충실을 도모한 것이었다.
그러나 개혁은 소신과 의지만으론 부족하다. 김육은 주위를 설득하면서 단계적으로 추진했다. 어떤 새로운 제도를 전면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당초 시작하기도 어렵고, 혹 실패하는 경우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일부에서 시행하여 효과를 거둔다면 자연스러운 확장을 기대할 수 있다. 최근 경기도에서 앞장선 재난기본소득 시행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육은 공직자로서 함께 사는 공동체를 위해 실제적인 일을 했다. 우리는 역사 인물 가운데 이런 인물에 주목해야 한다. 김육이 태어난 지 440년인 올해, 오는 9월 1일 가평군에서 실학박물관이 가평문화원·잠곡기념사업회와 함께 기념행사를 하는 것도 그런 취지이다.
김태희 실학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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