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의 전도란, 모든 사물을 바르게 보지 못하고 거꾸로 보는것, 다른 이해관점을 두는 것, 헛된 꿈을 꾸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가상인줄 모르고 실제의 것이라 착각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전도의 예를 구체화 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눈앞에 있는 모든 현상은 결국에 없어지고 말 것인데도 영원불멸 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권세나 재물이 영원할 것으로 생각하여 집착하는 것이다. 또 세상살이가 괴로움인데도 괴로움인 줄을 모르고 즐거움으로 착각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얼마전 코로나사태로 인해 쉬어가던 대면 강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른 아침 바쁜 준비를 하던 와중 필자는 지인에게서 메세지를 받았다.
‘3초의 비밀’ 이라는 짧은 글귀였다.
비밀 이라는 제목에 호기심을 가지고 글귀를 읽으며 잠시나마 준비하던 것을 멈추고 ‘3초의 비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나에게 ‘3초’는, 또 모든이에게 ‘3초’는 생각보다 많은 평화를 가져온다는 비밀스러운 이야기였다. 아침에 받은 이 비밀이야기로 필자는 삶을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은 그저 긍정적이기만 한 것일지, 부정적인 현실도 더 잘 받아들여야하는건지에 대해 혼자만의 ‘3초’ 를 사용하였다.
필자가 생각한 나의 평화는 기다림의 ‘3초’ 이다.
우리 모두는 항상 그렇듯, 매번 그렇듯 바쁜 일상을 살고 있다. 아침이 없는 필자 또한 흔한 현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아침이 인생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다. 필자 본인을 비롯한 현대인들은 사실 전도몽상(顚倒夢想) 의 삶을 살고있다고 볼 수 있다.
사고 싶은 것이 있을때 고민해 보는 나의 판단에 대한 기다림의 ‘3초’.
누군가에게 화가 날때 잠시 감정을 멈춰볼 수 있는 기다림의 ‘3초’.
힘이 들때 다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기다림의 ‘3초’.
엘리베이터의 닫힘버튼을 거리낌 없이 눌러버리는 것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기다림의 ‘3초’.
지칠때 잠시 내려놓고, 다시 시작할 나를 위한 기다림의 ‘3초’.
오늘을 시작할 나를 위해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기다림의 ‘3초’.
삶에 단 ‘3초’의 시간을 투자해보는 것.
크기는 작지만 영향력 있는 기다림의 숫자, 단 ‘3초’ 로 우리가 현실의 삶에 노예가 되지 않고, 내 삶의 주인공이 되어 전도몽상(顚倒夢想)의 삶에서의 주객이 전도 된 환경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되면 필자는 더없이 기쁘겠다.
임정민 수원시인문학자문위원·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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