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孫基禎) 선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워라’
1936년 8월, 거리에서 동아일보 호외를 주워든 국민들은 환호했다.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시상대에 우뚝 선 손기정 선수 사진에서 일장기가 지워졌기 때문이다. 일장기 말소사건을 주도한 이길용(당시 37세)기자는 회고록을 통해 “당시 광화문 앞에 모인 군중은 3·1운동을 방불케 하는 만세 소리와 환호성으로 가득했다”고 회고했다. 한 치밖에안 되는 혀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촌설활인(寸舌活人)을 언론이 실현한 것이다.
반면 언론이 제 구실을 못하고 촌설살인(寸舌殺人)을 한 예도 있다.
5공화국 시절인 1986년. “북한의 수공(水攻)으로 남한 전역이 물바다가 된다”며 당시 정부는 “북한이 200억t의 담수 용량을 가진 금강산댐을 건설 중이며 이것을 폭파하면 63빌딩 절반이 물에 잠긴다”고 발표했다. 국민의 불안 심리를 이용해 국가안보를 팔아 정권안보를 꾀한 대표적인 대국민 사기극이었다.
정확한 분석과 진실규명에 나서야 할 언론은 책무를 무시한 채 정부가 불러주는 지침을 그대로 받아 적기에 바빴다.
지난해 한 방송사가 ‘경기도의원도 비리유치원 감싸기… 외압 정황’이란 제목의 보도에서 필자가 경기도교육청에 전화를 걸어 감사결과를 거론하며 직원들에게 외압을 행사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이후 언론중재위원회는 보도 내용이 사실이 아님을 확인했고, 해당 방송사 역시 ‘외압을 행사한 사실이 없음이 밝혀져 이를 바로 잡는다’라는 내용의 정정보도문을 게재했다. 자체 감사에 나섰던 경기도교육청도 해당 보도와 필자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감사보고서에 수록하기로 했지만, 이미 필자의 명예는 땅에 떨어진 뒤였다.
언론의 사명은 제대로 검증하고, 정확히 보도하는 것이다. 추측만으로 보도하고,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가 되풀이된다면 언론 스스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고 공신력을 잃는다. 우리가 복잡하고 다원화된 정보의 홍수 시대에 매스미디어가 생성하는 정보를 올바로 이해하고, 냉철히 바라보아야만 하는 이유이다.
조광희 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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