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전염병과 정약용

“전염병이 전염되는 것은 콧구멍을 통해 병의 기운을 마시기 때문이다. 전염병을 피하는 방법은 병의 기운을 마시지 않도록 거리를 두어야 한다. 환자를 만날 때는 바람을 등지고서야 한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관질’ 편에 나오는 대목이다. 요즘 우리가 강조하고 있는 ‘거리 두기’가 있어 흥미롭다. 지금보다 의학 수준이 낮았겠지만, 경험적인 정보를 잘 활용하고 있었다. <자찬묘지명>과 <사암연보>에는 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다산이 황해도 곡산부사로 있을 때였다. 늦겨울에 전염병이 퍼졌다. 노인들이 걸렸다 하면 죽어서 고을에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30대였던 다산도 앓아누웠는데, 새해(1799)가 되었어도 낫질 않았다. 그런데 다산이 명을 내렸다. 중국에서 사신이 올 때 필요한데 평소 구하기 어려운 물품을 얼른 사오라는 것이었다. 모두 어리둥절했다.

아전이 물품을 사서 돌아오는데, 의주에서 서울로 급히 가는 파발마가 전했다. “중국 황제가 죽어서 사신이 온다.” 모두들 깜짝 놀라 다산에게 물었다. “어떻게 미리 아셨습니까?” 다산이 답했다. “전염병이 의주에서 왔기에 중국에서 온 듯했다. 또 노인들이 다 죽었는데, 중국 황제가 90세에 가까운 노인이라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조짐을 보고 미리 준비한 다산이었다.

중국 황제는 ‘10전 노인’이라 불리던 건륭제였다. 그 해(1799년)에 원로 정치가였던 김종수ㆍ채제공 등이 세상을 떴다. 이처럼 전염병은 역사 속에 엄연했다.

실학박물관이 지난 7월(7일부터 31일까지 24일간)에 온라인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수도권 거주자 307명이 응답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절반(50.5%)이 내년 상반기까지도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내에 종식될 것이라는 예상은 10.3%에 불과했다. 응답자 35%는 내년 상반기에, 21.5%는 내년 하반기에 종식될 것이라 예상했다. 2022년 이후에도 코로나19가 지속될 것이라 예상한 응답자가 무려 29%였다.

설문조사 시점은 일간 신규 확진자 수가 20명 내외로, 코로나가 다시 확산세로 돌아서기 전이었다. 그런데도 코로나19 종식에 매우 비관적이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코로나로 우울했던 그 2020년’은 향후 줄곧 소환될 텐데, 끝내 잘 극복한 우리 모습이 함께 기억될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이다.

김태희 실학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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