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다시 시작하는 힘, 상실과 애도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일반적으로 죽음과 이별이다. 우리는 수많은 형태의 이별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사랑하는 사람 또는 반려동물과의 사별, 이직으로 인한 직장동료와의 이별, 이사로 인해 정든 동네를 떠나는 등 우리가 애착하던 것들과 분리되는 일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일반적인 경험일 것이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다양한 이별을 마주할 때 그 이후에 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회피해버리거나 억누르기만 한다면 그 감정들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고 삶의 의욕조차 상실할 수 있다.

얼마 전 배우자와 사별한 경험이 있는 50대 여성과 80대 여성을 상담한 적이 있다. 사별하기 전에는 두 여성 모두 배우자와 정서적으로 친밀하고 애착 형성도 잘 되어 있었다. 갑작스러운 배우자의 죽음은 미처 이별을 준비하지 못한 그들에게 크나큰 상처와 상실감이 되었다. 하지만 같은 경험을 한 이 두 여성은 현재 다른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50대 여성은 사별한 지 3년이 지났다. 현재 깊은 상실감과 우울을 경험하고 있으며 불면증, 소화불량, 이명, 식욕감퇴, 낮은 삶의 의욕 등으로 인해 일상생활을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에 80대 여성은 5단계의 애도 과정을 거친 후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아름다운 시로 승화시켜 현재는 시인으로 등단해 살고 있다. 이처럼 같은 경험을 했지만 다른 일상을 살아가는 이 두 여성의 차이는 무엇일까? 바로 애도 과정이다.

정신과 의사 퀴블러-로스(Kubler-Ross)는 이별을 경험한 사람은 5단계의 애도 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1단계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부정하고, 2단계는 상실에 대한 좌절감이 분노로 표출되며, 3단계는 협상 단계로서 자신의 상실과 타협을 시도하려 한다. 4단계는 자신의 상실된 마음을 체감하며 깊은 슬픔을 느끼는 우울 상태가 되며, 마지막 5단계는 결국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가며 살아간다. 이렇게 5단계에 걸쳐 충분한 애도 과정을 거친 사람들은 80대 여성처럼 새로운 생활에 잘 적응할 힘을 얻을 수 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정서적 고립감과 외로움, 불안 등의 부정적 정서를 느끼고 있다. 또한 사회적 관계마저 불안정해지고 분노가 높아지거나 우울해지는 현상이 일어나곤 하는데 이는 상실에서 오는 정서적 반응과 흡사하다. 많은 것을 상실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살아가는 요즘. 모두 애도의 과정을 충분히 거쳐 다시 시작할 힘을 얻고 새로운 삶을 행복하게 살아나가길 바란다.

윤미정 尹가족치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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