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코로나19 방역 성과 뒤에는 많은 이들의 희생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집단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터에 나서는 돌봄 종사자들과 가정 내 돌봄을 온전히 떠맡게 된 가족 구성원들을 빼놓을 수 없다. 돌봄은 비대면, 비접촉이 허락되지 않는 영역이자 노인, 영유아, 장애인 등이 삶을 지속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다.
비공식적 영역에서 가정 내 여성이 주로 전담해오던 돌봄 노동을 공식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린 것이 ‘돌봄 경제(Care economy)’다. 해외에서는 주로 여성이 남성과 직장에서 평등한 기회를 갖기 위한 대안 차원에서 논의됐으며, 현재 영국, 덴마크, 독일, 일본 등 여러 국가에서 돌봄 경제와 관련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고령화 등에 따른 돌봄 수요 급증에 발맞춰 2019년 2월 ‘제2차 사회보장기본계획(2019~2023년)’에 돌봄 경제 활성화 방안을 담았다. 이번 계획에서 정부는 ‘돌봄 경제’의 개념을 ‘노인, 장애인 등의 돌봄 서비스 수요를 충족시켜 삶의 질을 높이는 한편, 관련 산업을 육성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정책 전략’으로 제시했다.
아울러 통합 돌봄 분야의 서비스와 인력을 확충하고, 케어안심주택, 주민건강센터 등 지역 밀착형 생활 SOC를 활성화하는 한편 정보통신기술(ICT), 사물인터넷(IoT) 등을 활용해 돌봄 기술(Care technology)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방향을 설정했다.
우리 사회 돌봄 경제의 현주소를 보면 낮은 급여와 복리후생, 열악한 노동조건 등으로 돌봄 종사자들의 이탈ㆍ이직률이 높아 숙련 노동자가 부족하고 이로 인해 전반적인 서비스의 질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수요자가 돌봄 서비스를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고 공급자가 돌봄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돌봄 종사자의 자격이 향상돼야 하고, 그 전제조건으로 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보상이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역사학자 이반 일리치는 돌봄 노동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상을 산업 사회의 작동 방식으로 설명했다. 그는 저서 ‘그림자 노동(Shadow work)’에서 임금 노동의 필수적 보완물인 가사 노동(그림자 노동)을 여성에게 배정하고, 노동이 ‘생산적 노동(임금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그림자 노동ㆍ무급 노동)’으로 분화되면서 가사 노동의 지위가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또한 경제학자 낸시 폴브레는 저서 ‘보이지 않는 가슴(The invisible heart)’을 통해 돌봄이라는 인간 활동이 우리 사회의 삶의 질을 결정해온 만큼 그 가치를 제대로 측정하고 사회ㆍ경제적 보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사회의 경제활동이 무임 또는 저임의 돌봄 노동 위에서 가능했음을 새삼 상기시켰다. 돌봄 노동의 지위와 보상을 개선함과 동시에 돌봄 경제의 실태를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관련 산업분류 체계를 정비하고 통계를 구축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임정희 한국은행 경기본부 경제조사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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