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대기업 중고차 시장 진출 ‘레몬마켓 vs 피치마켓’

‘레몬마켓(lemon market)’이란, 판매자보다 제품에 대한 정보가 적은 소비자들이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양질의 제품을 구입할 가능성이 작아지고, 그로 인해 저급품만 유통되는 시장을 의미한다. 이는 미국인들이 질 낮은 자국의 중고차 시장을 시큼해서 맛이 없는 레몬에 비유한 데서 유래한 표현이다. 반대로 우량의 재화나 서비스가 거래되는 시장을 피치마켓(peach market)이라 부른다.

최근 현대자동차가 중고차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다. 기존 중고차 업계에서는 대기업이 골목상권마저 장악하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국내 신차 시장 판매점유율 70~80%에 달하는 현대·기아차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면, 결국 독점시장이 형성되고, 소비자에게 그 피해가 전가된다며 ‘소비자 보호’를 주된 근거로 내세운다.

하지만 여론은 냉담하다. 오히려 낮은 가격의 허위매물로 유인한 후 다른 차량으로 강매를 일삼은 악성 중고차 딜러들의 횡포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시스템을 갖춘 대기업이 중고차 판매에 나서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여론이다.

이는 기존 중고차 업계에 대한 국민들의 뿌리 깊은 불신이 그 원인이다.

실제로 지금의 중고차 시장은 레몬마켓이다. 지난 6월 경기도가 중고차 온라인 매매 사이트 31곳의 판매상품을 조사했는데, 사이트에 올라온 중고차 중 95%가 허위매물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또한 지난해 11월 소비자 인식 조사에서도 76.4%가 중고차 시장이 불투명하고 혼탁하고 낙후됐다고 답했다.

기존 중고차 업계에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고차 시장이 2013년부터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그동안 대기업 진출이 제한돼 왔음에도, 7년이라는 기간에 기존 중고차 업계가 보여준 것은 스스로 자정능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국내 중고차 시장의 규모가 연 20조원에 이른다고 하니, 더 이상 골목상권이라 부르기도 머쓱하다.

작년 2월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기한이 만료되자, 기존 중고차 업계는 신설된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다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동반성장위원회가 부정적 의견을 제시하며, 최종 결정권을 가진 중소벤처기업부 역시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허용하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결국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은 중고차 시장을 피치마켓으로 변모시키기 위한 큰 흐름이다. 다만 기존 중고차 업계와 상생할 수 있도록 기존 사업자들에 대한 지원 방안이나 완성차 업체의 사업 범위를 제안하는 정책이 동반되지 않는 한, 언제든 냉혹한 독점시장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명심해야 한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