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 여성 독립의병장인 윤희순 선생(1860~1935년)과 구리시와의 연관성이 집중 조명되고 있다.
최근 13도 창의군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거둔 또 다른 성과다.
이영재 한양대 교수는 학술대회를 통해 윤희순 선생을 구리 출신과 연계짓는 일부 자료를 소개하면서 활발한 연구사업을 주문했다.
류인석 의병장의 조카 며느리인 윤희순 선생은 1907년 일제가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자 직접 30여명으로 구성된 ‘안사람 의병단’을 조직, 항거했다.
그는 국내 의병활동 15년, 국외 독립활동 25년 등 40여년 동안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그의 항일투쟁 시작은 1895년 을미의병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7년 고종황제의 강제퇴위가 이뤄지기 직전까지는 주로 가사를 지어 일본에 경고하고 항일독립의지를 일깨우는데 주력했다. 이후 군대마저 해산당하자 군자금을 모아 화약 등을 직접 제작, 공급했고 청년의병 600여명과 함께 훈련을 받으면서 군자금을 거둬 항거활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특히 여성 30여명으로 결성된 ‘안사람 의병단’은 마련된 군자금으로 화약 등 무기를 제조, 보급하는 역할 등을 수행했다.
1910년 일제 강점 후 시아버지 류홍석 선생과 함께 만주로 망명한 후 의병 재건에 나섰고 ‘노학당’을 설립, 항일인재 양성에 전념했다. 이후 만주와 연해주 일원에 흩어져 있던 후손들과 문인 등 의병운동 주역들을 규합, ‘조선독립단’을 조직하는 방법으로 무장투쟁 활동 무대를 확대시켜 나갔다. 그의 발자취는 현재 강원도 춘천과 충북도 등지를 중심으로 일부 고증과 선양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강원도의 경우 시댁이 있고 그곳에서 상당 기간 투쟁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출생지에 대한 명확한 고증이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다만, 일부 사가들에 의해 서울에서 태어났다는 설도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구리 출생을 주장하는 의견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일부 언론매체와 윤희순기념사업회 등을 중심으로 구리 출생설이 대두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위키백과에는 1860년 양주군 구지면(현 구리시)에서 윤익상과 평해 황씨의 큰딸로 태어났다는 기록도 있다.
이 교수는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최초의 여성 의병장으로 꼽히는 윤희순 선생을 주목하는데는 13도 창의대진을 통한 항일투쟁의 역사적 장소로 구리시의 의미를 논하는 주제와 무관치 않다”면서 “윤희순 선생은 13도 창의대진 결성과 서울 진공작전이 있던 동시대에 활약했다. 과거의 행정자료를 동원해 충분히 검토한 후 확정할 사안이지만 윤희순 선생을 구리시 출생으로 소개하는 자료들이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구리=김동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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