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은 김규식 선생은 구리시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역사 인물이다. ‘13도 창의군’ 사령장으로 활동했던 그는 훗날 대한독립군단 총사령관 역할까지 맡아 일제에 항거한 대표적인 독립투사다.
1907년 12월 13도 창의군의 서울진공작전계획 수립 당시, 그가 맡은 역할은 공작원을 서울 도성 안으로 침투시켜 정보를 보고하게 하는 임무였다. 시위대 병사 윤수정을 도성 안으로 들여 보내 시위대 부위 백낙정에게 알리게 하고, 백낙정의 지휘로 도성 안에서 13도 창의부대의 서울 공격 시 바로 대응케 했다. 당시 노은 선생은 연기우 등과 함께 ‘감사군敢死軍(결사대)’ 300명을 선발대로 동대문 밖 30리 지점 수택리에 통제본부를 설치하고 전군이 집결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오기로 했던 부대들이 양주와 포천 등지에서 일본군의 공격으로 지연됐고 결국 서울진공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새롭게 고증된 사실들이다.
구리시는 해마다 노은 선생의 생가터인 동구릉로 389번길 55의11 앞에서 매년 추모식을 열고 있다.
올해는 이역만리 중국땅에 쓸쓸히 잠들어 있는 선생의 배우자 등 가족 유해를 고국으로 봉환, 구리시립묘지에 안치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미뤄진 상태다.
앞서, 시는 선생의 생가터가 국가보훈처로부터 현충시설로 지정받아 그 뜻을 기릴 수 있는 생가터 표지판 설치 및 무궁화 나무로 단장된 기념공간 등을 조성했다. 선생의 이름이 새겨진 명예 도로명 부여 등 구리 시민과 나아가 모든 국민에게 선생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발판을 구축하게 됐다.
구리지역 출신으로 약관 20세에 대한제국 무관학교에 입학한 노은 선생은 1907년 헤이그 밀사 파견을 계기로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자 강원도 철원을 근거지로 흩어진 군대를 규합, 의병활동을 펼쳤다. 대일항쟁 무장단체인 ‘북로군정서’의 청산리전투에 제1대대장으로 참여, 일본군을 대파하고 통합 단체인 대한독립군단 총사령관으로 활동했다. 이후 사관양성소를 설립, 민족교육에 정진하는 등 독립운동의 공로로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받았다.
안승남 구리시장은 “일제에 항거하며 목숨바쳐 지킨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다시 한번 구리시가 역사 도시로서의 기상을 느낀다. 자랑스런 역사를 후손들에게 전파하려고 한다”면서 “다양한 기념사업을 통해 선양운동을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구리=김동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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