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대한체육회 100년과 공정한 세상

대한체육회는 올해 100주년을 맞았다. 1920년 7월13일 창립된 조선체육회를 모태로 한다. ‘건민(健民)’과 ‘신민(新民)’을 창립 이념으로 내세웠던 조선체육회는 1938년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가 해방 직후인 1945년 11월 부활했다. 정부 수립 이전인 1947년 6월 조선올림픽위원회(KOC)가 만들어져 1948년 런던 올림픽에 태극기를 앞세우고 참가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스포츠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엘리트 체육의 집중 육성과 메가 스포츠 이벤트 개최를 통해 이른바 ‘국위 선양’이라는 시대적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대한체육회는 명실상부한 한국 체육의 본산이다. 엘리트 체육 육성을 책임지는 조직, 스포츠 외교를 담당하는 조직, 생활 체육을 관리하는 조직 등 다양한 체육단체들이 순차적으로 통합해 지금 같은 거대한 몸집이 됐다. 4천억 원의 연간 예산은 대부분 국가에서 지원받는다. 이 단체의 새로운 100년을 시작할 제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가 내년 1월18일에 열린다. 후보로 거론되는 이들이 6~7명에 이른다. 선거 구도도 복잡하다. KOC 분리를 추진하는 정부 정책에 대한 찬반이 있고, 엘리트 체육 우선주의와 생활 체육 중심주의가 나뉘어 보인다. 지난해 스포츠혁신위원회의 권고안을 두고 이미 체육계는 심한 내분을 겪었다. 이번 선거는 그 연장선이다. 정치학에는 ‘정초(定礎)선거’란 용어가 있다. 미래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중요한 선거를 뜻한다. 대한민국 스포츠에 이번 선거는 정초선거가 되어야만 한다.

새로운 100년을 담아낼 수 있는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앞으로 한국 스포츠가 추구해야 할 최우선 가치는 ‘공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페어플레이도 공정에 속한다. 공정은 다양한 정책과 가치를 포괄할 수 있다. 2018년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는 경색된 남북 관계를 돌파하고자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급하게 추진해 성사시켰다. 민족, 통일, 화해 같은 큰 명분이 있었다. 예전 같으면 온 국민의 환영과 박수를 받았을 법한 일이었다.

하지만 미래를 이끌고 나갈 젊은 세대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들은 이것을 불공정한 행위로 판단했다. 예기치 않은 단일팀 구성으로 지금까지 땀 흘려왔던 다른 개인이 희생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봤다. 매우 상징적인 사례다. 공정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미래의 세상을 읽는 핵심 열쇳말이 될 것이다. 치열한 토론과 공정한 선거를 통해 대한체육회가 혁신의 계기를 맞이하길 바란다. 스포츠가 더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데 한몫 해내는 것을 보고 싶다.

위원석 경기도 체육정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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