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 대학원에 다니던 때 타 대학에서 하는 특강을 부랴부랴 들으러 갔던 기억이 있다. 특강의 제목은 무려 ‘인터넷이란 무엇인가?’였다.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는 일이다. 인터넷은 특강 따위 들을 필요 없이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진화되었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기호학자이자 소설가이자 움베르토 에코가 90년대 당시,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가 될 것이라고? 그럴 리가. 그것은 정보의 쓰레기장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지만, 인터넷은 쓰레기도 조금 떠 있는 ‘정보의 바다’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3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인공지능이 화두가 되고 있는데, 뭐 나와 별 상관이 없지 않을까 했던 그것이 벌써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최근 소름 돋게 경험하는 중이다. 정보를 얻고자 검색 용도로 사용하는 유튜브나 영화를 보기 위해 가입한 넷플릭스는 이미 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의 정치적 성향이나 관심사를 파악하고 자꾸 추가적인 제안을 건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나를 알고 하는 제안인지, 우습게도 그 알고리즘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에 처음 가입하던 때 별 생각 없이 공포영화 시리즈를 몇 개 보았는데, 그 이후 화면을 열면 벌건 피가 낭자한 영화포스터들이 시작 화면을 뒤덮게 되었다. 사실 정말 화가 나는 지점은 그 알고리즘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제안에 여지없이 혹하는 나에 대해서인 것 같기도 하다. 넷플릭스의 창업자 리드 하스팅스는 “우리는 모두에게 취향을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고, 넓혀주는(broaden) 플랫폼을 제공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취미 혹은 취향(taste)은 정말 그렇게 누워서 떡 먹는 방식으로 넓혀지는 것일까? 모든 예술이 그러하겠지만, 영화에 대한 취향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어떤 우연한 계기를 만나기도 하고 삶의 순간과 맞아떨어지거나 실제로 영향을 받기도 하면서 넓혀지는 것이 아니었나? 이것은 너무 보수적인 20세기 인간의 생각인가?
예술의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나로서는, 일단은 사소한 반항을 해 보기로 한다. 내 취향은 그렇게 간단하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좀 더 힘든 아날로그적 과정을 통해 내 인생의 취미를 만들어갈 것이고 확실히 나 자신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독자성을 추구해볼 것이라고 말이다. 기술발전에 대한 삐딱한 관점에서 시작된 이러한 결심은 자주 무너질 것이다. 인공지능의 제안은 점점 정교해질 것이고 나의 취미는 결국 그 안에서 맴돌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까지 처음의 질문을 잊지 않으려 한다. “네가 정말 내 취향을 안다고?”
이윤희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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