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성탄 전야, 산타는 있다

성야(聖夜)로 물든 거리, 코로나19 확산이 가져온 성탄절의 풍경이 낯설게 보인다. 흥겨운 캐럴조차 찬송가마냥 엄숙하게 들리는 지금, 그럼에도 오늘이 성탄 전야임을 느낄 수 있는 건, 어쩌면 밤새 산타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다른 한켠에서는 산타가 아닌 양육비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온갖 쟁송에 휘말리며 고군분투한 어른들도 함께 있었다.

바로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하며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던 배드파더스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사회가 양육비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던 시절, 배드파더스는 양육비가 사인간 단순 채권채무관계가 아닌 아이의 생존권과 직결되었음을 주장하며, 이 문제를 사회의 중심의제로 끌어올렸다. 그 결과 지난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는 쾌거를 이루게 했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이 입법까지 이어진 ‘상향식 입법’의 좋은 예라 할 것이다.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가정법원에서 감치명령을 받은 양육비 채무자가 1년 이내에 돈을 주지 않으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도록 해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학대로 규정했다. 또한 여가부장관이 양육비이행심의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직권으로 법무부장관에게 출국금지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해, 해외여행 다닐 돈은 있어도 양육비 줄 돈은 없다던 일부 파렴치한 부모들에게 경종을 울리도록 했다. 특히 초유의 관심사였던 신상공개 역시도 여가부 주도 하에 가능하도록 했다. 다만 무조건 신상이 공개되는 것이 아닌 양육비 미지급자에게 3개월 이상의 소명 기회를 주고, 그 소명이 타당한지 위원회의 판단을 거치도록 함으로써, 신상공개의 절차적 정당성도 확보했다.

전체 미혼·이혼 한부모 가정의 78.8%가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참담한 현실(여가부, 2018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 속에서, 이번 개정안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개정안이 통과되자, 배드파더스 구본창 대표는 “법이 시행되는 내년 6~7월까지는 존속해야 하겠지만 신상공개가 원활하게 운영되면 배드파더스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며 “사이트를 폐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마치 임무를 완수한 노병이 전장을 떠나듯, 그간의 공(功)은 모두 입법부에 돌린 채 미련 없이 돌아서는 그의 모습에 사뭇 경건함마저 느껴진다. 성탄 전야, 적어도 올해만큼은 ‘양육비’라는 선물을 가득 안고 온 산타가 있어 다행이다. ‘배드파더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지만, 알고 보니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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