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의 1914년 12월 24일 밤, 눈이 내린 죽음의 땅 ‘No man’s Land’라 불리는 곳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슈틸레나흐트,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독일군 참호 속에서 들리는 노래…. “그래 크리스마스잖아!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우리는 감동했고 환호했으며 캐럴은 합창이 됐다. 그리고 우리는 거짓말처럼 참호를 걸어 나와 적들과 악수를 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서로 쏘아 죽인 전사자들을 위해 합동장례식을 하고 기도를 하고, 담배를 나눠 피고 이발을 해 주고 가족사진을 돌려보고, 죽음의 땅 위에서 축구를 했다….
이 이야기는 2005년 EBS 지식채널을 통해 <크리스마스 휴전> 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며 많은 이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어쩌면 이 기적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때문이 아니었을까? 독일군 누군가의 이 노래로 참호 속 병사들의 영혼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준비하던 꼬마로, 첫사랑을 고백하던 크리스마스 이브로, 아이들의 선물을 준비하는 산타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살아있음에 대해, 삶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함께 노래하며 생각했다. “우리가 왜 서로 총을 겨눠야 한다는 말인가!”
음악은 어디에 있을까? 영화 ‘쇼생크 탈출’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장면이 있다. 누명으로 교도소에 복역 중인 주인공 앤디는 모차르트 <편지의 이중창>을 교도소 전체에 흐르게 하고 교도소 안 모든 사람들이 정지된 듯 음악에 귀 기울인다. 마치 정지된 시간과 같았다. 이 영화의 백미다. 그 후 장면이 더 감동적인데, 이 사건으로 2주간 독방에 갇혔다 나온 앤디는 독방에서 어떻게 지냈느냐는 동료의 물음에 ‘음악을 들었다’고 답한다. “녹음기를 가지고 들어갔어?” 그는 대답한다. “아니. (머리와 가슴을 가리키며) 음악은 여기에 있어. 그것이 음악의 아름다움이야.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지” 이렇듯 음악은 시공간을 초월해 온전히 존재한다. 자유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모든 예술은 음악을 동경한다’고 했던가?
팬데믹 시대. 크리스마스가 가장 먼저 시작되는 사모아 섬에서부터 가장 나중에 시작되는 미국령 사모아까지 세계는 약 47시간 동안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된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 지구 곳곳에서 음악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아직 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혀 저마다 전쟁을 치르고 있다. 끝이 언제일지 알 수 없는. 하지만 오늘 하루, 자신과 타인에게 또 그 무엇에게로 겨눴던 마음의 총을 내려놓고 노래를 부르자. 누가 알겠는가. 우리에게 어떤 기적이 일어날지.
주홍미 경기문화재단 문화예술본부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