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

“새집에서 살아보고 싶으시다는 아버님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집을 새로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2011년 9월 시장실을 찾아온 딸은 눈시울을 붉히며 애원했다.

자녀가 결혼하여 떠난 후에도 민원인 부모가 계속 살고 계신 집은 낡고 허름하여 여름에는 비가 새고 겨울에는 외풍이 세어 옷을 몇 겹씩 껴입고 지낸다고 했다. 이렇게 살고 계시던 중 중병에 걸린 아버지가 생전에 새집에서 한 번 살아보기를 간절히 원하신 것이었다.

부모의 집터는 농지법에서 지정한 농업진흥구역으로 농업인만이 주택을 지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건강이 나빠져 집에서 쉬고 어머니가 식당에 나가 일하여 버는 소득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집을 지을 수 있는 농업인 자격이 되지 않아 농지전용허가 (농지를 대지로 변경)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민원인과 함께 온 시청 담당 팀장에게 일생에 마지막 소원이시라니 도와 드릴 방법을 최대한 찾아보도록 당부했다. 보름 정도 지난 후, 담당 팀장은 농지전용허가를 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았다고 보고했다. 민원내용과 관련 규정을 면밀히 검토하고 고민한 흔적이 보고서에 담겨 있었다.

우선 1969년 수원 국토지리정보원이 촬영한 항공사진에서 그 당시에도 민원인 부모의 집터에 건축물이 지어져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음으로, 아버지의 병환이 깊어지기 전에 개를 사육해 팔았다는 전력을 본인과 이웃 주민들로부터 파악한 후 농업인 자격이 되는 축산업자가 되도록 개 10마리를 사육하시게 했다. 이 두 사항을 근거로 농지전용허가와 건축허가를 하여 새집을 짓도록 했다.

2012년 1월 초 민원인의 딸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새집 완공에 시청 관계자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일주일 후 집들이 저녁 식사자리에 초대한다고 했다.

집들이 날은 다른 일정으로 가지 못하고 이틀 후 부모님을 찾아가 주택 신축 축하와 건강을 빌어 드렸다.

지금까지 한 민원처리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이는 공무원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업무수행 자세를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공무원은 법령, 조례 등에 근거하여 주민에 대한 각종 인허가와 규제업무를 처리한다.

그러나 근거 규정이 주민들의 개별적인 민원내용을 전부 포괄할 수 없어서 공무원의 재량에 따라 허가와 불허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가능한 한 주민의 입장에서 긍정적, 적극적으로 검토를 하면 허가나 규제를 완화할 수 있는 민원이 많아질 것이다.

위에서 예를 든 사례와 같이, 허가조건을 충족시킬 방안을 검토하여 주민을 도와주는 것이야말로 주민중심행정, 주민만족행정을 실현하는 자세라 하겠다.

김춘석 전 여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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