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대지관어원근

지금은 터널이 개통됐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향인 양양에 가려면 인제에서 한계령 고개를 넘어야 했다. 뱀 허리 같은 길을 힘들게 올라가다 보면 정상에 있는 한계령 휴게소가 나온다. 차에서 내려 휴게소 전망대에 서면 험준한 한계령 고갯길이 한 폭의 그림처럼 반긴다. 눈길을 돌리면 속초와 양양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시가지 너머로는 푸른 바다가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자랑한다.

휴게소 전망대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마치 세상이 발아래 있고, 세상 모든 것들이 내 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없던 호연지기가 생기고, 원대한 포부와 꿈이 가슴 속에서 용솟음친다.

그러나 시내로 내려오면 세상은 휴게소 전망대에서 보던 거와 딴 판이다. 생선 비린내 가득한 부둣가에서 상인들이 관광객들을 상대로 물건값을 흥정하면서 실랑이하기도 하고, 우는 아이를 윽박지르면서 어디론가 바삐 가는 부모들도 보인다. 사람들의 자질구레한 일상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세상은 위에서 보는 것만도, 아래에서 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장자 ‘추수편’에 ‘대지관어원근(大知觀於遠近)’라는 구절이 있다. “큰 지혜는 멀리서도 볼 줄 알고 가까이서도 불 줄 아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장자는 “지극히 작은 데서 지극히 큰 것을 보면 다 볼 수 없을 것이요. 지극히 큰 데서 지극히 작은 것을 보면 분명치 못할 것이다”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도민들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한 해를 보냈다.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온갖 역량을 쏟아 부었다. 힘들어하는 도민들을 위한 다양한 민생정책도 입안하고 실행했다. 그러나 도민들을 위한 정책이라면서 도민들의 삶의 현장에서 괴리되거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는지, 반대로 경기도나 국가의 시스템과 큰 틀을 무시하고 즉흥적이고 인기영합적인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한 것은 없는지 되돌아본다.

또한, 당장 눈앞의 결과에 매몰돼 주변 사람들이 처지나 여건을 생각하지 않고 몰아붙이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신축년 새해가 밝았다. 묵은 때를 씻어내고 새롭게 마음가짐을 다질 때다. 햇볕이 따스하게 비추는 창가로 가 다짐을 해본다. 새해에는 멀리서도 볼 줄 알고 가까이서도 불 줄 아는 지혜를 갖출 수 있도록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면서 자신을 열심히 채찍질해야겠다.

박근철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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