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에 우리나라에서도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었던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 <당신의 육체는 전쟁터이다(Your Body is Battlegroung)>는 1989년 워싱턴에서 불붙었던 낙태 합법화 시위에 포스터로 사용했던 작품이다. 작가는 ‘낙태는 여성의 인권’이라거나 ‘낙태 찬성’ 등의 간단하고 알기 쉬운 문구 대신 한참을 생각해야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당신의 육체는 전쟁터이다’라는 모호한 문구를 작품에 넣었다.
1989년의 이 시위는 1973년 텍사스 주 달라스에 거주하는 한 여성이 “의학적이고 안전한 상태에서 면허를 가진 실력있는 의사를 통한 낙태”로 임신을 중단하고자 당시 낙태가 불법이었던 텍사스주를 상대로 위헌소송을 냈던, 어찌 보면 작은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현재도 미국의 주마다 낙태에 대한 권리를 다르게 보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이 논쟁은 현재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겠다.
지난해 말로 우리나라에서도 낙태죄가 최종적으로 폐지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대안 입법 없이 폐지된 것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고, 개별 산부인과들에서는 진료의 기준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혼란들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눈 가리고 아웅’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는 출생 성비가 상당히 개선되어 ‘딸이라도 좋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고 있지만, 2000년까지만 해도 여아 100명당 남아 출생률이 116.6%을 기록하고 있었다. 같은 해 셋째를 출산할 경우의 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142.8%이었던 통계까지를 들여다보면, 이런 비율이 이뤄지기까지 성감별에 의해 많은 여아가 낙태되었을 것이라는 당연한 추정에 이르게 된다. 낙태는 낙태죄가 버젓이 있던 2000년에도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성들의 문란한 생활 때문에? 아니 천만의 말씀, 가부장적 관습 때문에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바바라 크루거의 <당신의 육체는 전쟁터이다>라는 작품은 여성의 육체가 사회를 이루는 갖가지 가치관과 이념의 투쟁이 일어나는 장소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도덕과 의학과 법과 여러 사회제도가 서로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가지고 투쟁하는 장소로서의 여성의 몸은 아직도 여전히 전쟁터이다.
이윤희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