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능력주의에 정의는 없는가

코로나-19는 보건시스템을 비롯하여 환경, 행정구조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모순점을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증오’ ‘계층 간 갈등’ ‘불평등’ 등의 이슈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 등이 주최한 국제 반부패회의에서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교수의 발언이 화제다. “이전의 불평등이 팬더믹 위기로 더욱 강조되고 심화됐다. 팬더믹 동안 택배기사·트럭운전사·보건종사자 등 많은 노동자에게 의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경제적으로 어떻게 보상할지, 그 일의 존엄성에 대해 말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감독의 “질문,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 제롬 푸꿰의 ‘특권계급이 이탈했을 때’ 연구 등은 ‘사회계층 간 구분 짓기 현상의 만연’을 지적하며 원인으로 ‘능력주의(meritocracy)’에 기반한 엘리트 민주주의를 제기하고 있다.

사회정체성 이론(social identity theory)에 의하면, 자기정체성은 소속의 확인뿐만 아니라 다른 집단과의 비교를 통해 사회적으로 구분되고 싶은 욕구라고 한다. 자신이 우월한 조직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와 ‘그들’ 간의 차이를 부각시키려는 노력이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 보일 기회라고 믿고 있고, 그런 집단적 우월감의 확인과 과시가 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대식 ‘카스트 제도’의 입성을 위해 자신이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은 일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하는 심리적 현상은 ‘노력정당화 효과(effort justification effect)’로 이어진다. 강준만은 그의 논문 <왜 부모를 잘 둔 것도 능력이 되었나?>에서 “이게 어떻게 해서 얻은 자격인데…….”, “내가 누군지 알아?” 하는 자신의 소속 집단에 대한 과대평가와 집착은 누군가에게 무례를 저지르고 모욕을 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했다.

그러나 시장경제에서 내 재능으로 얻는 포상은 사회가 그것을 원하느냐에 달렸다고 샌델교수는 강조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기업가정신이, 소송 만능사회에서는 법학대학원이 유망합니다. 이게 모두 우리가 노력한 결과는 아니죠. 만약 고도의 소송사회가 아니라, 수렵사회나 전쟁사회에 산다면 우리 재능은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더 무능 해지는 것인가요?” 순전히 내 노력의 결과인지를 따지기 전에 내 재능을 포상하는 사회에 태어나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우연성’과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좋은 부모, 높은 지능은 우연적 재능이지 능력은 아니므로 우리의 행운을 높이 평가하는 사회에서 사는 것을 당연하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고 착각이다.

정현정 유한대학교 보건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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