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우리 교포, 美 대통령이 된다면

1987년 8월 미국 필라델피아의 올니 지역 한인회는 영어를 모르는 노인들을 위해 거리에 한글 간판을 설치하게 해 달라고 시 당국에 건의했다. 이곳 올니 지역은 한국 이민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필라델피아 시장은 기꺼이 이를 허가했다. 그러나 예상 밖의 문제가 터졌다. 백인 청년들이 떼를 지어 돌아다니며 한극 간판을 몽둥이로 부수기도하고 페인트를 발라 식별이 안 되게 했다. 그들은 “영어를 모르면 미국을 떠나라”고 대들었다. 그런데 같은 필라델피아면서 중국 화교들은 한자로 된 간판을 그대로 묵인했다. 그때만 해도 한국인에 대한 미국 지방의 이미지는 좋은 편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초기의 이민자들은 많은 고초를 겪었다.

물론 지금 미국에서의 한국계 이민자들의 지위는 그때와 다르게 향상되었다. 정부 고위직은 물론 정치권에 까지도 영향력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이민 역사상 처음으로 연방 하원의원에 진출한 사람은 김창준씨. 그는 1992년 공화당 후보로 하원의원에서 승리한 후 내리 3선을 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2000년 선거에서는 아깝게 패배, 4선의 꿈을 접어야 했다. 김창준씨는 하원에서 활동하는 동안 워싱턴과 한국의 중요 통로 역할을 했다. 지금도 정계 은퇴를 했지만 ‘김창준 한미 미래재단’ 이사장 등 한국과 관련된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김창준 이후 미 의회의 한국계 이민 출신이 뜸하다가 2018년 앤디 김이 뉴저지에서 민주당 후보로 당선됐고, 지난 1월3일(현지 날짜)에는 3명이나 하원의원으로 취임 선서를 하는 장면이 연출되어 미국에 있는 교포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워싱턴 주 출신 메릴린 스트릭랜드(한국 이름 순자), 미셸 박 스틸(한국 이름 박은주), 그리고 영 김(한국 이름 김영옥) 등이 그들이다. 특히 관심을 끈 것은 하원의원 스트릭랜드, 순자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그는 유일하게 한복을 입고 선서를 했는데 “내가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을 상징하고 우리 어머니를 명예롭게 할 뿐 아니라 미국 의회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한복으로 상징되는 한국인 여성으로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 준 것에 대한 뜨거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주한 미군으로 한국에서 근무한 흑인 병사와 결혼했고 그렇게 해서 낳은 딸을 ‘순자’라 이름을 지었다. 순자, 참 한국 냄새가 짙은 이름이다. 그런데 더 욕심을 낸다면 언젠가는 미국 대통령도 한국계 이민자에게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가 뭐래도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이다. 오늘 대통령에 취임하는 바이든도 아일랜드 이민 후손이고 오바마 전 대통령은 아프리카 케냐가 조상의 뿌리이다. 이렇게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민족들이 모여 미국을 만들었고 ‘아메리카 드림’을 이뤄냈다. 자기의 능력만 있으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계 이민은 아시아계 이민의 9%에 불과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과 창의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배경으로 뉴욕에서는 6월에 있을 시장 선거에 한국계 이민 2세 아트 장(한국 이름 장철희)이 강력한 후보로 대두되고 있다. 그는 미국 최대 은행 ‘JP 모건 에이스’의 금융인으로 활동하면서 뉴욕에서 시민운동가로 존경받고 있다. 이러다 보면 언젠가 미국 대통령에 도전하는 교포도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편 가르기 정치가 아닌 통합과 화해의 정치를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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