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승진시험

연말 연초에 많은 기업과 기관들은 인사를 한다. 그동안 직원들의 능력, 업무성과 등을 평가하여 승진과 전보를 시행한다.

2010년 7월 군수에 취임하니 서기관(4급) 2명, 사무관(5급) 7명 등의 승진인사를 해야 했다. 인사에 관한 내부보고를 받기도 전에 친척, 친구, 선거 참모, 심지어 중앙부처 현직 차관으로부터 특정인을 승진시켜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군 행정을 제대로 이끌려면 인사에는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 하고 가급적 이를 지켜야 한다는 소신이 있었기에 난감했다.

서기관은 이미 총무과장을 지내고 다른 부서에 전보되어 과장(급)으로 근무 중인 2명을 승진시키기로 내정했다. 어느 조직에서나 총무과장은 가장 중요한 핵심 보직인데 큰 잘못이 없었는데도 승진시키지 않는 것은 인사원칙에 어긋난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무관 승진에 대하여는 좋은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 끝에 전임 군수 시 작성된 승진후보자명부(승진서열)를 기본으로 하되 승진시험을 치러 그 성적을 반영하기로 하였다. 시험은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고 인사청탁을 거절하는 용도로 쓸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일부 언론에서는 인재를 선발하려는 새로운 방식으로 신선하다고 하였으나 다른 언론에서는 승진서열 상위에 있는 직원들의 기회를 박탈하고 사기를 저하한다고 평하였다.

사무관 승진 대상자 32명을 군청 대회의실로 불러 답안지로 쓸 B4 용지를 직접 나누어 주고 논술문제를 불러 주었다. ‘여주 군민이 화합과 단결을 하지 못하는 이유와 대책’, ‘여주군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와 대책(규제가 많다는 사유는 제외)’, ‘전임 군수 재직 시 군정방침’, ‘아름다운 여주 8경은 무엇인가’ 등 4문제였다.

시험을 보는 직원들은 여주에서 공무원으로 25년 이상 근무하였기에 위와 같은 사항에 대해 한 번쯤은 고민하고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직원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험이라 처음에는 당황하고 술렁이었으나 잠시 후 답안지를 메워나가기 시작했다.

답안지 뒷장까지 가득 적은 직원이 있는가 하면 문제마다 한두 줄 정도 쓰는데 그친 직원도 있었다. 나중에 이의를 제기하는 직원이 있으면 보여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해 답안지를 세 번씩 읽어보고 채점했다. 채점 후 승진서열과 시험점수를 고려하여 7명을 선정, 승진발령을 냈다. 이후에는 근무하며 일 잘하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을 알 수 있어 이들 위주로 승진을 시켰기에 승진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인사가 만사라고 한다. 인사를 공정하게 하고 큰 성과를 내거나 중요한 일을 한 직원을 우선 승진, 영전시키는 관행을 정립해 나가야 직원들이 승진, 영전을 기대하며 열심히 일을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동기부여(motivation)가 조직의 단합을 유도하고 업무성과도 기대 이상으로 증대시키리라 확신한다.

김춘석 전 여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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