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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경제이슈] 저축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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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경제이슈] 저축의 역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는 안빈낙도, 안분지족을 강조하던 시대에 파격적인 경제사상을 주창했다. “무릇 재물은 우물과 같아서 퍼서 쓸수록 자꾸 가득 채워지고, 이용하지 않으면 말라버린다. 비단옷을 입지 않으니 나라 안에 비단 짜는 사람이 없어지고, 비뚤어진 그릇을 탓하지 않으니 일에 기교가 없고, 나라에 공장과 도야가 없어지고 기술과 재주도 사라졌다.” 소비를 해야 생산이 살아나고, 기술개발과 경제발전도 가능함을 간파한 것이다.

저축은 과거 우리나라 경제성장에 지대한 역할을 해왔다. 1988년에는 우리나라 가계순저축률이 23.9%에 달하는 등 가계의 높은 저축은 기업의 투자로 연결되었고 경제성장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소비와 투자가 위축된 상황에서도 저축이 긍정적 역할을 수행할까? 소비 위축으로 생산된 상품이 판매되지 않는다면 기업은 생산을 축소하고 노동자를 줄일 것이다. 비단옷을 입지 않으니 비단 짜는 사람이 없어지는 이치다. 실업이 늘고 소득이 줄면 소비와 투자는 더욱 감소하고 고용상황도 악화된다. 케인즈는 이와 같은 대공황 이후 불황과 실업의 원인을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설명하며 저축이 개별 가계에는 바람직할 수 있으나 경제 전체적으로는 총수요를 감소시킨다는 ‘저축의 역설’을 주장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0년 4분기 및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소비는 전년대비 5.0% 감소했으며 ‘2020년 3분기 자금순환’에 따르면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자금운용 규모는 83조8천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43조2천억원 증가했다. 최근의 소비 위축 및 저축 확대는 향후 경제성장, 고용, 임금 등 미래에 대한 불안 심리에 일부 기인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가계는 소비보다는 저축을 추구하는 것이다. 한국은행(이용대 2020)은 경기부진이 장기화될 경우 미래 예상소득 감소, 신용제약 증대 등으로 가계의 저축성향이 높아지는 행태 변화가 나타나는 가운데 소득 불평등도 심화되면서 높아진 가계저축률이 고착화되고 소비부진이 장기화 될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올해 경제도 높은 불확실성이 예상된다. 백신 보급으로 감염병 확산세가 잡히고 그토록 염원하던 일상으로의 회복이 이뤄진다면 오랫동안 억눌렸던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소비 위축이 소득 감소에 기인한 것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2020년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재난지원금을 받은 가계가 식료품, 가정용품 등 생필품 위주로 소비지출을 확대한 점, 저소득층일수록 평균소비성향이 크게 하락했다는 점 등이 우려를 높인다. 조속한 감염병 억제와 일상적 경제활동 재개만이 우리 경제가 회복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소비 위축 상황이 장기화될수록 소득의 회복도, 경제의 회복도 어려워질 수 있다. 우물이 마르기 전에 물을 퍼내면 새 물이 가득차지만 우물이 말라버리면 어떠한 노력도 헛되기 때문이다.

박성경 한국은행 경기본부 기획금융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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