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당신만 혼자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얼마 전, 택배기사에 대한 비하 발언 사건이 화제가 됐다. 해당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도 없이 숨어버렸고, 피해자의 가슴은 상처만 남았다. 음원을 들은 이들은 한결같이 ‘어떻게 저런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할 수 있는가?’하며 고개를 젓지만, 결국은 유사한 일들이 우리를 둘러싼 당장 주변에서 벌어지는 풍경에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나?’ 하는 상념에 빠지게 한다.

우리가 싸워야 하는 건 저 멀리 있는 재벌 회장이나 상위 1%가 아니라 나보다 크게 나을 것도 없으면서 나를 낮게 보는 한두 층 위 사람들이다. 지금 여기를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같은 층 사람들끼리도 친할 수 없다. ‘위계 간 불화’에 ‘위계 내 불화’까지.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이러한 상황에 택배배달원은 나를 대신해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나의 안전을 위해 배달을 선택하고, 다른 누군가는 나를 대신해서 그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돈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에 우리는 저임금을 내고 있음에 배달원 분들께 감사와 미안한 마음을 느껴야 한다.

일의 존엄성과 자본주의 두 가지가 공존할 수는 없을까. 일은 단순한 돈벌이 수단을 넘어 사회구성원으로의 의미이고, 개인의 존엄성을 존중받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불평등뿐 아니라 노동자에 대한 인정과 부족한 존경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쓰레기를 줍는 사람은 의사만큼 중요합니다. 그가 일하지 않으면 질병이 창궐할 겁니다.” 마틴 루터 킹의 말이 옳다. 모든 노동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일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능력과 양극화에 대한 부분을 이제는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한다. 각자의 성취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뤄 낸 것이 아니다. 그 능력을 발견해 주고, 기여할 기회를 준 환경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또 내가 성공하지 못한 것은 내가 못나서 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책해서 아파하지 말자.

환경이 우리에게 행동의 기회를 제공할 때, 우리는 우리 성격의 좋고 나쁜 점을 보여줄 수 있다. 우리에게 자신의 관대함을 보여줄 자원이 없거나 관대함을 보여줄 사람이 없으면, 그 훌륭한 천성도 보여줄 수가 없다. 전우익님의 책을 오랜만에 다시 집어들었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 겨’. 정말 그렇지 아니한가?

정현정 유한대학교 보건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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