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경기도박물관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경기 역사·문화 ‘보물창고’
고려청자가 뿜어내는 오묘한 푸른빛에 저절로 ‘탄성’
조선시대 대표적 유물인 초상화 보며 정신세계 교감

2020년 경기도박물관 재개관 기념 특별전으로 개최된 ‘경기별곡 : 민화, 경기를 노래하다’ 전시. 코로나19로 14일까지 연장 전시된다. 윤원규기자
2020년 경기도박물관 재개관 기념 특별전으로 개최된 ‘경기별곡 : 민화, 경기를 노래하다’ 전시. 코로나19로 14일까지 연장 전시된다. 윤원규기자

개인이든 조직이든 변화해야 사는 시대다. 코로나19는 시대의 변화를 가속화시켰다. 변화는 무엇보다 그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역사의 흐름을 읽는 혜안과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을 간파하지 않으면 방향을 잃기 십상이다. 형식과 내용까지 새로워지는 질적 변화로 나아가려면 어떤 조직이든 인식의 전환과 용기가 필요하다. 박물관도 예외일 수 없다. 경기도의 정체성은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다. 아마도 그것은 성장과 발전의 속도에 비해 인문학적 뒷받침이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현재 경기도의 정체성은 이전보다 또렷해졌다. 1996년에 문을 연 경기도박물관은 개관 25년을 맞아 1년여 동안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했다.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하기 위해 문을 닫았다가 재개관한 2020년 8월까지의 여정은 변신을 위한 시간이었다.

339일간의 대장정 끝에 ‘환골탈태’라는 표현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대변신이 이루어졌다. 변신의 내용과 방향은 경기의 정체성을 보다 선명하게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박물관 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경기도박물관(관장 김성환)도 꽃샘추위를 견디며 새봄을 맞고 있다. 광장에 우뚝 서 있는 향나무 가지에도 푸른 기운이 감도는듯하다. 화성 사대문 옹성처럼 둥근 부채꼴의 광장 게시판에서 ‘경기별곡’이란 친숙한 이름과 마주한다. 2020년 8월 재개관을 기념한 특별전시의 주제가 ‘민화(民畵), 경기를 노래하다’이다. 민화의 화사한 빛깔과 선명한 구도가 봄맞이에 제격이다. 박물관 홍보를 담당하는 이지희 학예사의 안내를 받아 박물관에 들어서니 막힘없이 탁 트인 실내구조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 국가 근본의 땅, 경기

‘국가 근본의 땅, 경기’ 2층 전시실에 새긴 경기도박물관의 선언이다. 꼭 어울리는 표현이라고 감탄하자 유물을 소개하던 김성환 관장이 빙긋 웃으며 화답한다. “우리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1년을 숙의한 끝에 도달한 결론입니다.” 경기도의 정체성을 이처럼 명쾌하게 표현한 말을 달리 찾을 수 있을까. “설명문에 붙어 있듯 사실 이 말은 조선 11대 국왕 중종이 경기관찰사를 임명하면서 했던 말이지요. 성종은 이렇게 덧붙였지요. ‘나라에 경기가 있는 것은 나무에 뿌리가 있고, 물에 샘이 있는 것과 같다. 경기의 정치가 잘 되고 못됨은 나라 전체의 무게와 관계가 있다.’고 말입니다. 천 년에 걸쳐 이룩된 경기의 역사와 문화는 고유문화와 외국문물이 다듬어져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양하고 개방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지요.” 이처럼 경기문화는 우리 역사문화의 원형을 만들어 왔던 것이다. ‘코리아’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린 고려시대에 경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018년부터 경기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지난 2018년이 천 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였다. 이를 기념하여 경기도박물관도 경기천년 특별전을 열었다.

고려청자 앞에서 천 년의 긴 세월에도 변함없이 뿜어내는 오묘한 푸른빛을 감상하는 일은 박물관에서 빠트릴 수 없는 일이다. 천자의 나라로 자부한 고려의 당당함과 빼어난 예술성이 조화를 이룬 청자를 비롯한 고품격의 유물은 물론 조선시대의 대표적 유물이자 경기도박물관의 자랑인 초상화를 두루 살피며 고려와 조선을 관통하는 정신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벽을 걷어내고 공간을 툭 틔운 전시실은 시원하다. 쭉 뻗은 벽면으로 전시된 유물들이 관람객을 유혹한다. 효종의 명을 받아 북벌의 임무를 수행했던 이완 장군의 투구와 창을 비롯한 몇몇 특별한 유물을 유리관에 담아 양쪽에서 입체적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전시한 방식도 신선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유물을 최대한 가까이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관람객들이 유물을 만져 깨트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랬느냐?” 염려하자 김 관장의 대답이 놀랍다. “관람객을 믿었습니다.” 말이야 쉽지 박물관의 관리 책임자로서 특별한 용기가 없으면 내릴 수 없는 결정이다. 이처럼 과감한 전시 형식과 섬세한 배려가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전국의 공공박물관들에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점이다. 소중한 유물이 손에 닿는 거리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관람객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하는 것이기에 감동으로 연결된다. 이제까지 관람객들이 그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고 한다. 관람객에 대한 믿음과 용기가 박물관 문화의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1층 선사ㆍ고대실에는 주먹도끼를 사용하던 구석기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철갑옷이르는 고대의 경기도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윤원규기자
왼쪽부터) 1층 선사ㆍ고대실에는 주먹도끼를 사용하던 구석기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철갑옷이르는 고대의 경기도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경기도박물관은 ‘도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고 지방문화예술의 진흥을 통해 도의 정체성 확립’이란 목적으로 설립, 1996년 개관된 후 2020년 대대적인 리뉴얼을 거쳐 재개관했다. 경기도박물관 전경. 윤원규기자

■ 고려·조선 대표 유물로 보는 경기도 천 년의 역사

초상화로 둘러싸인 전시실 한가운데 검은 빛깔의 의자와 손잡이에 새가 조각된 지팡이가 시선을 끈다. 설명을 들으니 이 의자와 지팡이는 현종이 1668년에 백헌 이경석(1595~1671)에게 하사한 것이란다. 이경석은 인조부터 효종, 현종 3대에 걸쳐 국난극복과 국가재건에 헌신한 명신이다.

조선의 초상화는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터럭 한 올도 틀리지 않게 그릴 뿐 아니라 검버섯이나 마마자국까지 그대로 세밀하게 그리는 기법으로 정신까지 담는다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다. 초상화를 통해 조선 양반사대부들의 정신세계가 결코 만만하지 않음을 새삼 느낀다. 태조 이성계의 초상과 포은 정몽주의 초상 사이에 민화풍의 초상이 있다. 이 초상은 고려의 마지막 개혁군주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초상이다. 김 관장의 설명을 들으니 그 기이한 배치가 바로 이해된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는 역사적 사실을 세 점의 초상화 배치로 전달하는 방식이 신선하다.

초상화 옆으로는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다. 광주, 여주, 이천을 비롯하여 경기도 곳곳에 도자기의 명산지가 널려 있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통해 경기도 장인들의 미적인 감각과 예술적 취향을 엿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볼거리가 많다고 평택농악, 양주별산대놀이, 안성남사당패 같은 경기도의 무형문화재를 소개하는 공간을 둘러보는 일도 빠트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2층 전시실을 모두 둘러보면 “여기가 경기!”라는 박물관의 선언이 가슴에 와 닿는다.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경기도박물관은 ‘도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고 지방문화예술의 진흥을 통해 도의 정체성 확립’이란 목적으로 설립, 1996년 개관된 후 2020년 대대적인 리뉴얼을 거쳐 재개관했다. 경기도박물관 전경. 윤원규기자
분무공신으로 봉해진 기념으로 그려진 보물 제1177호 오명항 초상 등 다양한 인물들의 초상이 전시되고 있다. 윤원규기자

■ 민화, 경기를 노래하다

2020년 8월 재개관 기념 특별전이 열리는 전시실은 입구부터 밝고 화사하다. 민화라는 전통예술이 작가들의 세련된 감각과 첨단의 기술로 새롭게 선보이는 창조의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경기도에 살고 있는 민화 작가 30인과 참신한 감각과 기법으로 무장한 미디어아트 및 설치 작가 4인이 참여하여 경기도의 역사와 전통과 관련된 주제를 친숙한 민화로 표현해 감동과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전시는 제1부 ‘경기 문화유산을 품다’, 제2부 ‘경기 역사 인물을 그리다’, 제3부 ‘정조와 책가도’, 제4부 ‘역사의 장면을 담다’로 구성되었다. 조선 후기 서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민화가 현대에는 어떻게 진화했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전시된 ‘책가도’가 정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역린’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뜻밖이다. 정조는 민화의 한 갈래인 책가도를 유행시킨 주역이다. 이처럼 정조는 어좌 뒤에 세우는 병풍인 ‘일월오봉병’ 대신에 책가도를 설치할 정도로 새로운 예술을 사랑한 왕이기도 하다. 책가도를 입체적으로 만든 설치 작품도 눈길을 끈다.

2층의 고려ㆍ조선실에서는 고려와 조선의 중심이자, 국가 근본의 땅이었던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예술, 민속모습이 전시되고 있다. 다양한 도자기의 모습 . 윤원규기자
2층의 고려ㆍ조선실에서는 고려와 조선의 중심이자, 국가 근본의 땅이었던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예술, 민속모습이 전시되고 있다. 다양한 도자기의 모습 . 윤원규기자

■ 지극한 정성으로 감동을 선물하다

기증문화재는 경기도박물관 설립의 모체가 되었다. 전체 소장품 중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 기증문화재라는 사실을 통해 경기도박물관이 그동안 지역과 소통에 얼마나 힘써 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문중에서 보관하던 유물들이 박물관에 기증되면서 전문 인력의 손길을 거쳐 “모두의 보물”이 되었던 것이다. 박물관은 경기명가 기증유물 특별전 ‘조선시대 사대부’(2010), ‘천년의 뿌리 용인이씨’(2013)를 비롯하여 ‘모두의 보물이 되다’(2020)까지 거의 매년 기증유물을 주제로 특별전을 열었다. 김 관장은 기증유물이 꾸준하게 늘어나는 비결을 “꾸준한 관심과 지극한 정성에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를 찾아내어 이를 조사하고 환수하는 사업도 적극 벌일 계획이란다. 올해 박물관에서 벌일 특별전시 중에서 관심이 쏠리는 것은 ‘경기사대부로의 초대; 초상화 특별전’이다. 앞에서 잠시 소개했듯이 경기도박물관은 조선시대 회화의 정수라 할 초상화 12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정몽주 초상(보물 제1110-2호)이나 심환지 초상(보물 제1480호)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최고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초상화의 진면목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

‘정성을 다해 관람객들의 마음을 여는 것’이 경기도박물관이 박물관의 문화를 선도하며 성장해가는 비결이다. 과감하게 장식을 걷어내고 건물의 골조를 드러내는 파격을 연출한 것이나 관람객들이 눈앞에 유물을 배치하여 자세히 살필 수 있도록 한 것도 정성을 다해 사람의 마음을 열려는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성을 다하는데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눈도 많이 내리고 추위도 유난했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정성으로 감동을 선사하는 경기도박물관을 찾아 새봄을 맞이하면 어떨까.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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