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평범한 것들의 비범함

3월의 첫날이다. 지난해 초 우리나라에서 코로나 첫 확진자가 나오고 1년이 넘게 지났다. 시간과 세월은 흔들림 없이 흘러갔다. 많은 나쁜 일들이 일어났고 많은 좋은 일들이 일어났다. 진창에 발을 담그고서도 하늘의 별을 응시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란 존재다. 어떤 선현은, 어떠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 그것이 인간만의 재주라고도 했다.

<나는 산책이 늘었다나는 요리가 늘었다나에게 시간이 너무나도 늘었다축제가 사라졌다장례식이 사라졌다옆자리가 사라졌다재난영화의 예감은 빗나갔다잿빛 잔해만 남은 도시가 아니라거짓말처럼 푸른 창공과 새하얀 구름이 날마다 아침을 연다…” ‘거짓말처럼’-김소연>.

우리는 사소하다고 여겼던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보지 못했던 것을 보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먹는지, 소중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무엇보다 ‘내가 누구인지’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산책을 하고 푸른 창공을 보았다. 간혹 손수 만든 먹거리를 나누면서 눈가로 콧등으로 웃는 주름이 잡히거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 그게 행복이었다. 그동안 우리가 원했던 많은 것이 사실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이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이야기 한 ‘빵과 포도주, 햇빛과 바람, 맑은 공기 같은 단순하면서도 영원한 것들’.

이제 깊은 골짜기에까지 훈풍이 불면 만물은 각양각색으로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한적한 곳을 찾아 산책하고, 봄의 음식을 천천히 먹고, 봄의 차(끓는 물을 절반쯤 붓고 찻잎을 넣은 다음 그 위에 다시 물을 붓는다.)를 마시자. 소중한 사람과 낮고 작게 이야기를 하고 자잘한 추억을 공유하자. 놀라운 것은, 이 평범한 것들이 모이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비범한 순간이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

김훈 작가의 에세이집 <자전거여행>에는 승려 초의(1786~1866)의 차에 관한 글을 소개한 대목이 나온다. “겨울에는 찻잎을 주전자 바닥에 먼저 넣고 끓는 물을 붓는다. 여름에는 끓는 물을 먼저 붓고 물 위에 찻잎을 띄운다. 봄, 가을에는 끓는 물을 절반쯤 붓고 찻잎을 넣은 다음 그 위에 다시 물을 붓는다.” 초의의 이 글에 대해 김훈 작가는 이렇게 썼다. “왜 그래야 하는지, 그렇게 해서 차 맛이 달라지는지를 물을 수는 없지만,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낙원은 일상 속에 있든지 아니면 없다…. 자전거는 청학동 어귀에서 방향을 돌려 화개 골짜기로 되돌아왔다”

낙원은 일상 속에 있든지 아니면 없다! 여기에서부터 우리는 다시 배움의 여정을 시작한다.

주홍미 경기문화재단 문화예술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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