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문화재청 보도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승탑으로 평가받는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국보 제101호)을 전면 해체해 보존처리를 한 지 5년 만에 복원을 마쳤다고 한다. 이 탑은 1911년 일본인에 의해 뜯겨 법천사지를 떠난 후 서울 명동, 일본 오사카, 경복궁 등으로 옮겨 다녔는데 올해 중에 원래 있던 원주의 절터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한다. 1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갈 지광국사현묘탑의 소식을 접하니 최근 여주로 돌아온 고달사지 원종대사혜진탑비 비신이 머리에 떠올랐다.
필자가 원종대사혜진탑비 비신을 처음 본 것은 서울 광화문 근처 직장에 다닐 때인 1985년인데 당시 경복궁 근정전의 회랑 남서쪽 모서리에 깨어진 상태로 눕혀져 있었다.
“아니, 여주의 거대한 비석이 왜 이곳에 와 있지?”라고 의아해하면서도 반가웠다. 그러나 파손돼 연고도 없는 경복궁 회랑 구석에 홀로 있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고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오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혜진탑비에 대해 알아보니, 고려 광종 때 국사인 원종대사 찬유 (869-958년)의 생애를 기록한 비로 975년 건립됐으나 1915년 무너져 여덟 조각으로 나뉜 비신(높이 279㎝, 너비 162㎝, 폭 31㎝)은 다음해 국립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고달사지 절터에 남아있던 혜진탑비의 비신 이외의 귀부(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와 이수(뿔 없는 용을 새긴 비석의 머리)는 고려 초기 불교미술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대표해 보물 제6호로 지정돼 있었다.
2010년 7월 군수로 취임한 뒤 혜진탑비 비신의 행방을 확인해보니 경복궁 복원공사 때문에 국립중앙박물관 지하 수장고로 옮겨져 있었다. 7월 말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장을 찾아가 “혜진탑의 비신은 비의 일부이고 깨져 있어 이곳에서 지상 전시가 어려울 것이니 원래 있던 절터에 복원하거나 여주박물관으로 이전해 햇빛을 볼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라고 간청했다.
그해 11월에 개최된 문화재위원회에서 원종대사혜진탑비 비신을 복제해 절터에 복원하고 원 비신은 여주박물관 실내에 전시하도록 결정했다.
2014년 8월 고달사지에 있던 귀부와 이수 사이에 복제한 비신을 세워 혜진탑비를 원래 모습대로 복원했다. 복제한 비신은 원 비신과 석질이 가장 유사한 북한 해주산 화강암을 수입해 3천230자의 글자를 한 글자씩 정과 망치로 새겨 완성했다.
원 비신은 여주를 떠난 지 100년 만인 2016년 7월 여주박물관(신관) 1층 로비 전시홀로 돌아왔고 다섯 달 후 보물로 추가 지정됐다.
경복궁에서 혜진탑 비신을 처음 만난 지 31년 만에 여주에서 다시 만나니 감회가 새롭고 가슴이 뿌듯했다.
김춘석 前 여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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