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번은 여행으로 다녀오고 싶었던 나라, 미얀마에서는 지금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가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에 대한 강경 진압이 이뤄지고 있다. 거리에 나온 시민들이 두들겨 맞거나 심지어 총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들이 연일 생생하게 보도되고 있고,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세계 시민의 한 사람으로 이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장면들,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어떤 역사 속 장면들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겨누어진 총부리 앞에 시민들은 일상의 기물들을 방패 삼아 다시 거리로 나와 보지만 최루탄과 총기 발포에 무력할 뿐이다.
하지만 속절없이 다치고 죽어나가던 미얀마 시민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지 못했던 형태의 시위를 다시 벌이고 있다. 시민들의 바리케이드 앞쪽에 빨랫줄을 길게 걸어 여성들의 치마를 널어놓는 것이다. 미얀마에는 여자 치마나 속옷 아래로 지나가면 복과 남성성이 달아난다는, 한마디로 재수가 없다는 통념이 있고, 정말 우습게도 이 방법이 군인들을 멈칫거리게 해 시민들의 안전 확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명백히 여성혐오적인 속설이지만 그것을 역이용하는 발상이 실제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통쾌하면서도 슬픈 일이다.
거리에 내 걸린 미얀마 여성들의 치마 바리케이드 장면을 찍은 다양한 사진들을 보면서, 그 치마들이 어쩐지 낯설지 않은 느낌도 든다. 알록달록한 꽃무늬나 반복되는 패턴들이 있는 넓은 치마, 일상적으로 일할 때 편히 입을 것 같은 그 치마는 우리나라 농어촌 여성들의 일바지, 이른바 몸빼와 대단히 닮아 있는 것이다. 몸빼를 떠올리니 미얀마의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몸에 걸쳤던 치마를 벗어 거리에 내 걸어서라도 내 가족들을 지키겠다는 간절한 심정이 한층 더 가까이 와 닿는다.
치마 바리케이드가 만들어진 뒤에는 여성들이 브래지어나 생리혈이 묻어 있는 생리대까지도 빨래줄에 내 걸기 시작했다. 철삿줄에 사용된 생리대를 줄줄 엮어 방패처럼 가지고 다니는 여성도 사진에 포착됐다. 평소에는 숨기고 감추던 이 천 쪼가리들과 여성용품들이 밖으로 드러나고 그것이 힘을 발휘하는 시절을 지나고 있는 미얀마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소수민족들 간의 투쟁과 국제사회 속의 지정학적 관계, 군부와 민주세력의 갈등으로 인해 어떤 방식으로 흘러갈지 알기 어렵지만, 한 가지는 조심스럽게 예측할 수 있다. 이 내전의 와중에 여성혐오적인 통념을 뒤집어 전면에 내세웠던 이 애절하고 눈물 나는 전략은, 이후 미얀마 여성들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 같다는 정도의 예상 말이다.
이윤희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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