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노인봉양 아닌 ‘실버파워’ 시대

한인의 미국 이민사를 다룬 ‘미나리’가 할리우드를 강타해 화제고, 이 영화의 조연배우 윤여정이 대한민국 영화 역사 102년을 통틀어 최초로 배우 부문으로 미국 아카데미 영화상 후보에 이름을 올려 더 화제다.

윤여정은 데뷔 55년차 원로배우다. 올해 74세인데, 70대에 전성기를 맞은 듯한 느낌이다. 영화뿐만이 아니라 가장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의 ‘인싸’가 된 듯하다.

윤여정은 생계형 배우임을 자처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살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목숨 걸고 한 거였어요. 요즘도 그런 생각엔 변함이 없어. 배우는 목숨 걸고 안 하면 안 돼”라고 말했다.

보통 60대 이상을 실버세대라 부른다. 60대 이후면 은퇴를 통해 인생의 2막을 연다고도 한다. 청춘 시절 고난의 보상을 위해 흔들의자에 않아 여유 있게 인생을 누리는 게 어쩌면 우리가 좁은 시선으로 보던 부러운 노년의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누가 74세의 배우 윤여정을 ‘노인’이라 하겠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942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올해 팔순이며, 우리나라 야당 대표인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바이든 대통령보다도 두 살이 많다.

실버타운도 옛말이다. 이제 실버세대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대세이고 주역이다. 이쯤 되면 고령화 사회를 걱정할 것도 없다. 노인들도 청년 이상의 제 역할을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옛날 기준처럼 젊은 세대가 노년층을 봉양한다고만 생각하면, 이 사회의 미래는 없다.

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00년 고령화 사회(고령인구 비중 7% 이상)로 진입한 이후 18년 만인 2018년 고령사회(고령인구 비중 14% 이상)가 됐다. 이런 추세라면 2026년에 초고령사회(고령인구 비중 20% 이상) 진입이 유력해진다. 이 같은 흐름을 볼 때 청년세대가 노년층을 봉양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만 빠져 있으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암울하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현실이다. 그러나 고령화의 의미가 예전처럼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실버세대에 맞는 실버파워가 필요하다. 실버세대의 잠재력을 이끌어 적극적인 경제·사회활동에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윤여정은 특별하지 않다. 자신의 역할과 삶에 충실했고, 남들이 노인이라 부르는 나이에 누구보다 멋진 인생을 꽃피우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의 조연처럼, 우리 사회에도 훌륭한 조연 역할을 해줄 실버세대가 참 많고 늘어나고 있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 그 노인의 삶을 방향을 정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 아니다. 노인 잠재력을 이끌어줄 사회적 인식개선과 제도 보완 및 장기적인 정책 마련을 시작할 때이다.

최영은 행동하는 여성연대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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