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한류가 폭발적이다. 그중에서 케이팝(K-POP)은 독보적이고, 한글, 케이푸드(K-Food)와 케이드라마(K-Drama)도 이를 보태고 있다. 우리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호응에 어깨가 절로 으쓱여진다. 코로나19로 모든 길이 막혀 있긴 하지만, 많은 세계인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대한민국을 오가고 있다. 여행, 사업, 학업, 취업 등 각양각색인데, 그들은 우리 사회를 다양한 모습으로 바꾸고 있다. 경기도에는 60여만명이 거주하고 있고, 전체 25%라고 한다. 유명 프랜차이즈가 아니더라도 다문화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을 동네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처럼 그 내용은 우리 생활에 속속 들어와 자리하고 있다. 이제 그들의 다문화가 더는 낯설지 않다.
민족주의가 휩쓸던 20세기에 우리 역시 한민족의 정체성을 여기에 가둬두려 했다. 우리의 전통문화 모든 것은 세계 최고의 것으로 자화자찬 됐고, 이에 익숙하지 않은 것들은 매몰돼야 했다. 우리는 독단적이 됐고, 획일적이고 통일적인 체제를 한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우리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을 평가절하하는 것이 아니라 배타적인 사고와 태도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다문화를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배경의 우선은 디아스포라였다. 고조선 때부터 전쟁을 통해 대규모의 이산(離散)이 이뤄졌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고려와 조선시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쪽으로의 대규모 디아스포라도 있었고, 그들의 다문화를 소개한 이들이 귀화인이었다. 고려 초 발해의 멸망으로 그 세자 대광현(大光顯)과 함께 20여만명 이상의 귀화인이 들어왔다. 이후 거란(요)과 여진(금), 몽고(원)과의 관계에서도 이산이 각국에서 이뤄졌다. 고려에 들어온 이들의 많은 수는 옛 경기지역인 배주(현재 황해도 배천), 양주(거란촌) 등 경기에 거주했다. 조선시대에도 왜인·야인(여진)·중국인·회회인(이슬람)들의 귀화가 있었고, 간혹 표류 등으로 서양 이방인들의 귀화도 있었다. 이들 중 일부가 경기에 살았다. 그들과 그 후손들은 경기인(京畿人)이 됐고, 그들이 지니고 온 각국의 문화는 우리 문화에 접목되며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경기문화로 발전했다.
전통시대에 귀화 또는 투화(投化)라는 상대적인 개념으로 불리던 그들을 우리는 다문화(多文化), 다문화인으로 부르고 있다. 여기에도 여전히 우리와 다르다는 상대적인 인식이 들어가 있다. 이제는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경기인이라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 그들의 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경기문화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환 경기도박물관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