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퇴근길.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저만치 앞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다툼 소리가 도시를 흔들고 있었다. 상황을 보니 편도 1차선 도로의 모퉁이 앞에서 택시의 승객이 내리는 동안, 뒤에 오던 승용차가 앞지르기 시도. 승객이 내리자 택시는 출발했고, 두 차량의 접촉이 일어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상황이다. 워낙에 1차로였던지라, 차로를 빼곡하게 메우고 있었던 차량 행렬은 일제히 경적을 울렸고, 경적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성질 급한 몇몇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고함을 질렀다. 두 운전자의 다툼 소리에 보태진 고함, 시끄러운 경적소리까지. 일대는 이내 아수라장이 되었다.
발걸음을 멈추고 그 광경을 한참 지켜보았다. 모두가 상대의 잘못이라며 화를 내고 있었다. 각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행동이 당연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상대방으로서는 이기적인 범주를 넘어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는 행동이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고, 결국에는 전체가 엉망이 되었는데도 엉뚱한 데로 화살을 돌리고 있었다. 정차하고 싶은 곳에 서는 것이 택시 아니냐고, 서 있는 택시를 질러가는 것이 잘못이냐고, 이 길을 지나간 죄밖에 없다는 등 모두가 억울하다고 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는 실수라며 떳떳하다 주장하고 타인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분노하며 그들의 도덕성을 비난한다. 결국은 영화 ‘분노의 윤리학’의 문소리 님의 대사처럼 “잘못한 사람이 없네요?”라는 씁쓸한 결말이다. 인간의 이기심에 얼굴이 붉어진다. 혹자는 잘 몰라서 실수하는 것을 가지고 그렇게 매도하면 심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실수도 아니고 몰라서도 아니다. 상대방에게 피해를 줄 것임을 알면서도 사소한 것으로 생각하고 멈추지 않는다.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사소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사소한 것이 생활이고, 그것을 모은 것인 인생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모여 인생의 물줄기를 이루게 된다. 사소하게 생각한 잘못들 때문에 남에게 상처를 주고 마침내 그것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거다. 지금 그런대로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되거들랑 베풀고 살자. 베푼다는 것은 패배주의도 온정주의도 아니다. 공동선(common good, 개인을 포함해 사회 공동체 전체를 위한 선)이다. 이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좋은 삶의 의미에 대해, 공동선의 의미에 대해. 이것은 우리가 회피하면 안 될 가치에 관한 질문이다. 콘크리트 위에 꽃을 피우듯.
정현정 유한대 보건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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