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5. 안산향토사박물관

천년 고도의 역사·전통 ‘보물창고’
조경·김류·강세황·김홍도 등 역사적 인물의 고장
안산문화원, 2천600여점 유물 기반 2008년 설립
1층 들어서면 실학 태두 성호 이익 ‘화포잡영’ 눈길
푸른 바다를 뽕밭으로 간척 상상이 지금 현실로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 소릉지서 발굴된
석양·난간석주 야외전시 피맺힌 역사 묵묵히 증언

초등학생들이 야외전시장에 마련된 초가집을 구경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초등학생들이 야외전시장에 마련된 초가집을 구경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안산향토사박물관은 안산시 상록구 석호로 144번지에 자리한다. 건물에 다가서면 출입구 위쪽에는 안산문화원 간판이 보이고 건물 오른쪽으로 거의 땅에 닿을만한 위치에 안산향토사박물관 표지가 설치되어 있다. 안산향토사박물관은 신도시 건설 과정에서 소멸되어 가는 향토유물사료를 보존하고 안산향토문화를 창달하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1984년에 창립된 안산문화원에서 1991년부터 수집하기 시작한 2천600여점의 유물들을 기반으로 해서 보다 체계적으로 안산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알리고자 2008년 설립되었다. 이처럼 안산향토사박물관의 탄생 배경이 안산문화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지금도 안산향토사박물관은 안산문화원의 부속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안산의 인구가 70만 명(외국인 5만여명 포함)에 이르고 임진왜란 시 행주대첩의 숨은 공신 조경(趙儆, 1541~1609), 인조반정의 일등공신 김류(金, 1571~1648), 실학의 태두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4),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과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미상),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실제 모델인 최용신(崔容信, 1909~1935) 등과 같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의 고향이자 주요 활동지역인 점과 소장 유물 등이 풍부한 점을 고려할 때 안산문화원과는 별도의 조직으로 안산향토사박물관을 분리 독립시킬 필요가 충분한데도 아직까지 독립기관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5대째 안산에서 거주하며 31세에 마을 이장을 했고 반월농협협동조합 조합장 등을 역임한 바 있으며 안산향토사박물관 운영을 주관하고 있는 안산 토박이 이한진(李漢震, 79) 안산문화원장은 인터뷰에서 “저희 안산향토사박물관은 성호 이익과 같은 역사적 인물 이외에도 민속, 역사, 지명유래 등 지역사 전반을 다루고 있는데, 현재 안산향토사박물관에서 해야 하는 지역사 연구는 안산문화원, 안산향토사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중이다. 박물관의 교육도 문화원의 교육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는 계획이 없지만, 박물관의 규모를 확장하고 전시와 교육을 확대 시행하여 시민들에게 지역사를 함께 공유하는 공간을 구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용두레떮괭이 등 농기구를 전시하고 있는 안산생활관의 모습. 윤원규기자
용두레, 괭이 등 농기구를 전시하고 있는 안산생활관의 모습. 윤원규기자

이한진 원장은 코로나 사태로 학생들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대책에 대해서도 “안산역사문화탐방 아카데미는 지역내 초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프로그램으로 원래는 지역의 문화유적을 답사하는 교육프로그램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작년부터는 학교로 출강수업을 대신하고 있다”며 “지역내 전 학교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단 인근이나, 외국인 학생들이 많은 지역의 학교도 함께 진행한다. 학교 교육의 경우, 지역의 문화를 좀 더 쉽고 재밌게 배울 수 있도록 동영상 자료를 이용하거나 놀이수업을 더 첨가하여 지역사를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공간은 1층 박물관과 야외 전시공간으로 구분된다. 먼저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성호 이익이 안산 첨성촌에 거주하면서 실학자답게 푸른 바다(碧海)를 뽕밭(桑田)으로 만드는 간척 사업을 꿈꾸며 쓴 시 화포잡영(花浦雜詠: 성호전집 제4권 17수)이 있는데 자세히 보아야 눈에 띈다.

도랑 내고 밭 옮겨서 방조제를 쌓으면 / 穿渠移圃築防潮

소금기 줄어들어 벼가 자라 풍성하리 / 鹹減禾生盡沃饒

……(중약)…….

푸른 바다 뽕밭으로 쉬 바꿀 수 있나니 / 碧海桑田容易變

백성에게 좋은 계책 말해 주려 하노라 / 良謀輸與訪芻

실학자 성호가 시를 통해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실제로 간척 사업이 이루어졌으니 놀랍기만 하다. 안산이 바닷가여서 어업과 농업이 발달하였음을 간파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성호의 시를 맨 앞에 배치한 듯하다. 안산은 실학의 탄생지다.

행정구역변천도에는 안산의 역사가 보인다. ‘안산(安山)’이란 지명의 역사부터 확인할 수 있다. 940년(고려 태조 23) 처음 안산이라고 명명한 이후 1천 년 넘게 사용하며 지켜오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1일 조선총독부에 의해 안산이란 이름이 사라져버리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지역민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1986년 다시 안산이란 이름을 되찾았다.

안산시 상록구 안산문화원 내에 위치한 안산향토사 박물관은 안산 내 문화유적지에서 발견된 유물 및 고문서부터 근현대 민속품에 이르기까지 2천여점의 자료를 수집, 전시하고 있다. 안산향토사박물관 전경. 윤원규기자
안산시 상록구 안산문화원 내에 위치한 안산향토사 박물관은 안산 내 문화유적지에서 발견된 유물 및 고문서부터 근현대 민속품에 이르기까지 2천여점의 자료를 수집, 전시하고 있다. 안산향토사박물관 전경. 윤원규기자

안산의 역사적 인물을 소개하는 구역에서는 당대 최고의 문인화가인 표암 강세황과 그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워 서민들의 생활상을 농익은 필치로 한국적 풍속화를 그려 조선의 화단(壇)을 대표한 제자 단원 김홍도의 그림도 감상할 수 있다. 아울러 산행길, 서당, 길쌈, 주막과 같은 풍속화 밑에 갓, 엽전꾸러미, 큰 주걱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실물을 비치해 두었다. 더해서 일제강점기 때 안산 샘골에서 식민지 수탈에 피폐해진 농촌을 살리기 위해 농촌계몽운동으로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 최용신의 이야기가 영상으로 마련되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충주 탄금대에서 전사한 김여물(金汝, 1548~1592) 장군의 애국 충정과, 김여물의 손자이자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 방어의 총 책임자였던 김경징의 아내 박씨가 ‘나라가 깨지고 집이 망하면 또한 여자라 하여 스스로 모면할 수 있는가’ 하더니 과연 이때에 이르러 한집안의 부녀가 모두 목을 매어 죽(연려실기술 인조조고사본말)은 이 집안 여인들의 열녀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나라에서는 사세충렬문(四世忠烈門,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8호)을 세웠다. 그러나 역사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김경징의 아내 박씨의 말처럼 국가가 힘이 없어서 국토가 유린당하고 사내들이 백성을 지켜주지 못해서 힘없고 약한 여인들이 몸을 던져 죽은 것이다. 이 문을 지나면 낮은 곳의 물을 높은 곳으로 퍼 올리는 데 쓰는 용두레, 겨우내 방구석에 두고 오줌을 누었던 놋요강, 무늬를 새겨 모양을 내는 떡살, 참빗과 얼레빗, 조선시대 신분증인 호패 등 안산 사람들의 다양한 의식주 생활문화를 접할 수 있다.

우리민속 체험장 한가운데 나무를 둘러싸고 포개져 있는 맷돌이 정겹기만 한데, 마루 위 다듬잇돌과 방망이가 어울려 내는 또닥또닥 똑딱똑딱 귓전에 들리는 그 소리에는 힘들게 살았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시름이 짙게 묻어 있다. 바로 앞방은 어린이에서부터 어른까지 전통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하하호호 체험공간이다.

야외전시장에는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장악한 세조가 즉위 3년(1457)째에 파헤쳐 버린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1418~1441) 권씨의 소릉지(昭陵址)에서 발굴된 석양(石羊)과 난간석주(欄干石柱)는 피맺힌 역사를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안산시 상록구 일동과 팔곡일동 일대에 걸쳐 있는 석축 산성인 성태산성은 삼국시대 중국과의 무역을 위한 교통의 요지이자 고구려·백제·신라가 각축을 벌였다. 성태산성 디오라마. 윤원규기자
안산시 상록구 일동과 팔곡일동 일대에 걸쳐 있는 석축 산성인 성태산성은 삼국시대 중국과의 무역을 위한 교통의 요지이자 고구려·백제·신라가 각축을 벌였다. 성태산성 디오라마. 윤원규기자

방앗간은 농촌 마을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발로 디디어 곡식을 찧는 디딜방아, 물을 이용해 물레를 돌려 방아를 찧는 물레방아, 말이나 소가 빙빙 돌며 맷돌을 돌려 곡식을 찧는 연자방아가 그것이다. 동네 처녀 총각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네도 빈 채로 흔들거린다. 누런 초가집은 안채와 사랑채가 ‘ㄱ’자 형태로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고, 부엌과 가장 먼 거리에 변소를 설치하는 지혜가 돋보인다. 특히 외양간에는 말이나 소에게 먹이를 주던 여물통이 아직도 걸려 있다. 넓은 잔디 마당에서 백년가약을 맺는 전통혼례식에 신부가 연지 곤지를 찍고 가마꾼들이 메는 가마를 타고 시집가는 장면이 연출된다. 오는 4일에도 전통혼례식이 거행될 예정이다.

안산향토사박물관은 안산의 걸출한 인물과 천년 고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안산은 실학의 탄생지다. 실학은 실질을 숭상하고 ‘지금 여기’를 보다 나은 삶의 터전으로 일구려 시무(時務)에 열중한다. 그 첫 번째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확인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안산향토사박물관이 그곳이다. 주변에 있는 성호 이익의 성호박물관, 단원 김홍도의 단원미술관, 최용신기념관도 함께 둘러보자.

권행완(정치학박사, 건국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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