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상대방에게 축하할 일이 있을 때나 감사하는 마음을 전할 때 선물을 한다. 지금까지 받은 선물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두 번 받은 박카스인 것 같다.
첫 번째는 경제기획원 유통소비과 직원으로 근무하던 1987년 서울 은평구 통일로 도로변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던 할머니 한 분이 찾아오셨다.
가게 앞 벽면에 대어 자판기를 설치했으나 얼마 뒤 구청 직원이 와서 통일로변에는 안보 관련 규정에 박스 형태의 구조물을 집 밖에 설치하는 것이 금지됐다고 했다. 며칠 후 자판기를 회사에 반납했으나 회사에서는 계약서에 자판기 반납과 관련한 조항이 없다며 설치비와 보증금 등을 반환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이 억울한 사연을 소비자보호단체, 은평구청, 서울시청 등을 찾아다니며 하소연했으나 별 도움을 받지 못하고 경제기획원 소비자보호 업무 담당자에게까지 오셨다.
민원 내용을 자세하게 검토한 후 자판기회사 담당 임원에게 법 규정을 모르는 할머니에게 자판기 설치가 금지된 곳에 이를 설치, 판매한 것은 민법상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에서 소비자보호 업무를 담당하는 자로서 설치비 등의 반환 소송을 진행하겠다고도 항의했다.
전화를 건 지 열흘 정도 지난 후 할머니가 박카스 한 박스를 들고 다시 찾아오셨다. 회사에서 설치비 등을 반환해주더라고 하시며 고맙다고 연신 머리를 숙이셨다. 가져오신 박카스를 할머니와 직원들이 함께 나눠 마셨는데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두 번째는 대구 국군 군의학교에서 군 생활을 할 때 5촌 고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어느 날 대구에서 넉넉하지 못한 생활을 하고 계시던 고모님이 면회를 오셨다. “얼마나 고생하니. 어제 어버이날에 대구 번화가인 동성로에 나가 카네이션을 팔아 돈 좀 벌어 이것을 사 왔다. 피곤할 때 마셔라”라고 하시며 박카스 한 박스를 건네주셨다. 박카스를 받으며 가슴이 찡했다. 그 후 제대하기 전까지 여러 번 고모님 댁을 방문해 문안 인사를 드렸고 고모님이 말년에 서울 도봉구 창동 따님 집에 계실 때는 생신 전에 찾아뵙곤 했다.
누구에게나 정성과 진정이 담긴 선물은 오래 기억된다. 그러나 요즈음 세태는 각자 바쁘게 살다 보니 직접 찾아뵙기도 어렵고 은행 예금통장으로 돈을 이체해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작년 초 코로나바이러스 발생 이후 이런 추세는 가속화되는데 이럴수록 예전에 받은 박카스 한 박스가 더욱 생각난다.
김춘석 前 여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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