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謝過)는 언론인의 숙명이다. 정정(訂正) 또한 피할 수 없다. 사과든, 정정이든 용기다. 30년쯤 글 쓰고야 깨달았다. 이제 사과할 건 사과한다. 정정할 건 정정한다. 하지만, 이번 요구는 아니다. 사과 요구에 동의하지 않는다. 여성 혐오가 머릿속에 자리한 적 없다. 그렇게 보이도록 실수한 부분도 없다. 그렇게 보인다는 제3자 평가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그런 만큼 이를 설명해야 할 듯하다. 이 또한 독자에 대한 도리라 본다.
경기도청 3개 노동조합이 연대 성명을 냈다. 본보 3월31일자 사설을 지적하고 있다. ‘불법 투기를 공무원 부인 탓으로 돌리고 공무원 부인의 역할에 따라 패가망신한다는 시대정신을 벗어나 성인지 감수성을 거스리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일부 공직자 불법 투기 문제를 공직사회에 만연한 것으로 오해하도록 사설 논조를 내고, 불법 땅 투기를 한 공무원 당사자의 책임을 공무원 부인 탓으로 돌려서…’라고 밝혔다.
제목 속 ‘부인들’이 ‘전체 공직자 부인’이 아님을 설명해야 할 것 같고, 공직자 문제를 부인 탓으로 돌리는 논조가 아님을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제목 속 ‘부인들’을 보자. ‘투기마다 등장하는 공무원 부인들공무원 남편 망치고 패가망신하다.’ 시점을 현재진행형으로 했다. 지금 망치고, 지금 패가망신하는 행위다. 지금 투기ㆍ구속ㆍ몰수가 진행형인 공무원은 딱 둘이다. 포천 공무원과 경기도청 전 공무원. 패가망신도 눈앞 그대로의 표현이다. 대출했던 전 재산이 몰수 보전됐다. 패가(敗家)다. 존경받던 공무원인데 수갑을 찼다. 망신(亡身)이다. 모든 게 판사의 엄한 결정이다.
책임을 여성에 돌렸는지 보자. 성명은 사설의 ‘논조’를 거듭 지칭하고 있다. 논조라 함은 특정 사안에 대해 언론이 지속적ㆍ일관적으로 견지하는 판단 또는 가치다. 이번 공무원 투기에 대한 경기일보 논조는 분명하다. 범죄의 출발은 공무원에 있다. 남편에서 시작됐다. 다소 지겹도록 이 논조를 써왔다. 사설 작성자인 나도 칼럼을 썼다. 본보 3월25일자에 게재된 칼럼-‘[김종구 칼럼] 그날, 공무원 아니라 땅투기꾼이었다’-이다.
선량한 다수 공직자 부인들을 매도했는지도 보자. 사설 네 번째 문단을 그대로 옮기겠다. ‘평생 공직자의 퇴임은 볼 때마다 숙연해진다. 30여년을 공복의 자세로 살아온 데 대한 존경이다. 그런 퇴임식에는 늘 배우자가 함께한다. 감사와 축하의 꽃다발을 함께 받는다. 공직자에게 배우자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하다. 이들의 희생과 절제 없이는 올곧게 수행할 수 없는 길이다.’ 많은 공무원 배우자를 소중히 평가하고 있다.
시대착오가 아님도 그 문장 속에 있다. 이 부분에선 ‘부인’이라 쓰지 않았다. ‘배우자’라고 썼다. ‘남편은 공직자, 아내는 내조자’야말로 시대착오적 표현이다. 남녀가 공히 주인인 세상이다. ‘배우자’라는 표현이 옳다. 이 또한 범죄 가담자로 특정된 앞선 ‘부인들’과 구분하는 표현이다. 사설 마지막에 또 한 번 대비했다. ‘30년 공직 뒤에 배우자, 투기 공직 뒤에 배우자, 많은 부인들은 전자(前者)에 산다.’ 무엇을 매도했다는 건가.
본 사설이 게재된 날(3월31일) 이후 상황은 달라진다. ‘부인 둘’로의 비난 정황이 더 중해졌다. 포천 공무원 부인은 함께 입건됐다. 그도 공무원이었단다. 경기도청 전 공무원의 부인 개입 정황이 더 커지고 있다. 회사 설립 외에 ‘부인 쪽 금전 유입’도 밝혀졌다. 선량한 공직 배우자는 절대 이러지 않는다. 나는 이걸 충분히 기획하고 썼다. 문구 하나, 음절 하나에도 오해가 없도록 썼다. 지금이 아니다. 3월30일, 그런 자세로 썼다.
여성 혐오 인식 소유자, 성인지 감수성 부족자…. 참담한 표현이다. 회복 안 될 명예 훼손이다. 나의 뇌(腦)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인식이 1천180자 어딘가에 있다는 거 아닌가. 그러면 증명해주기 바란다. 끝까지 다 읽고, 정확히 찍어 주기 바란다. 단, 어느 경우에도 분노의 크기는 평가하지 마라. 가혹하든, 훈훈하든, 그건 여론에서 전달받은 언론의 영역이다. 20억, 70억 벌었다는 그 공무원들과 그 부인들을 향한 국민 분노의 크기다.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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