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좋아하는 문화 콘텐츠를 보고 또 보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보면 볼수록 느껴지는 의미도 달라지고, ‘저런 내용이 있었던가?’하면서 새로운 내용을 음미하기도 한다. 그중에 ‘응답하라 1988’이란 드라마가 있다. 2015년 말에서 2016년까지 방송됐는데, 주인공인 ‘덕선’과 같은 동년배여서인지 그 시절의 그리움에 흠뻑 빠져 소소한 행복과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곤 한다. 그런데 문득, 불과 5년여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출연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 김주혁님, 고 전미선님, 그리고 영원한 무한궤도, 고 신해철님. 가슴이 뭉클하다. 우리는 물론 그들 스스로조차 2021년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할 것이라고 상상도 못하셨을 터. 그러나 본래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 주위에 상존하고 있다. 아주 사소한 일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볼 수 있지 않은가. 말도 안 되게 예측 불가한 삶의 사실 앞에서 필자는 새삼 소스라쳤다. 우리가 내일 살아 있을지 아닌지는 순전히 운에 달렸다는 자각이 뇌리를 흔들었다. 더불어 이번 서울시의 보궐선거를 지켜보며 10년 전 보궐선거와 유사한 아이러니한 -떠나보내고 또다시 맞이하는- 상황에, 그분들은 10년 후에 이렇게 될 줄 아셨을까’하는 삶의 애환이 밀려왔다.
초록이 물오르는 봄날에, 필자는 ‘덧없음’에 ‘허무하지 않음’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덧’은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을 말하고, ‘덧없음’은 헛되고 허전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생무상’, ‘사는 게 일장춘몽’이라며 허망하다고 한다. 가톨릭의 그레고리안 성가에 ‘생의 한가운데, 우리는 죽음 속에 있다네’라는 구절이 있다. 죽음 앞에서 누가 용감할 수 있을까. 그래서 삶이 허무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살고자 노력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인생은 절대 허무하지 않다. 인생이란 자신만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가치를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여정이다. 타고난 재주를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인생의 의미와 가치가 결정되므로, 어떻게 쓸 것인지는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세상을 살면서 죽기 전까지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은 찰나의 연속이라고 한다. ‘시’, ‘분’, ‘초’로 구성된 인위적인 단위가 아닌 그보다 더 초자연적인 단위의 연속이다. 그 찰나의 흐름 속에서, 언제 떠나도 좋을, 덧없음에 허무해하지 말자.
정현정 유한대 보건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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