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9. 용인시박물관

구석기부터 현재까지 용인의 역사·문화를 담다

윤원규기자
2004년 용인시 기흥구에 설립된 ‘용인시박물관’은 용인동백택지개발지구 발굴조사에서 구석기 문화층 발견을 계기로 용인시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설립됐다. 용인시박물관 전경. 윤원규기자

용인시박물관은 110만의 인구를 가진 용인시의 유일한 시립박물관이다. 용인시박물관의 역사가 겨우 10년 남짓하다는 말을 들으면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그런 궁금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장 용인시박물관을 찾아보라. 특례시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용인시가 문화유산이 풍부한 역사도시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996년에 시로 승격되고 겨우 10년이 지난 2005년에 처인, 기흥, 수지 3개의 구청이 동시에 들어설 만큼 용인은 수도권 남부의 핵심도시로 급성장한다.

용인시박물관은 용인시의 급성장과 맞물려 있다. ‘용인동백지구’를 개발하면서 구석기문화유적이 쏟아져 나옴에 따라 ‘용인문화유적전시관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2009년 12월에 ‘용인문화유적전시관’을 개관한 것이다. 이때 연 기획전이 ‘사진으로 본 동백의 시간과 공간’(2019)이다. 개발시대를 증언하는 것으로 사진만한 것이 달리 있을까. 문화유적전시관은 개관 10주년이 되는 2018년 2월에 용인시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단장한다. 용인시박물관이란 이름을 가진 세월이 겨우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박물관 곳곳에서 시립박물관이란 이름값을 다하려 고민한 관계자들의 역력한 흔적을 발견한다.

윤원규기자
2층 용인역사실에서 관람객들이 빗살무늬토기 등 선사시대 유물을 살펴보고 있다. 윤원규기자

■충절과 개혁, 실학정신이 깃든 용인의 선비문화

재개관에 맞추어 기획한 ‘돌에 새긴 사대부의 정신’은 사대부들의 삶과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전시이다. 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은 흑백의 탁본으로 사방이 채워져 있다. 용인이씨, 연안이씨, 한양조씨, 해주오씨, 우봉이씨 등 용인과 인연을 맺은 주요 가문의 묘비 탁본과 40여 점의 관련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먹 자국이 선명한 이숭인의 묘비를 살피다가 그가 정몽주와 이색을 길어낸 대학자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다. 여태 그를 몰랐다니! 용인시 향토문화제 제3호 ‘대낭장비’의 주인공은 삼학사로 유명한 오달제이다. 청나라 황제와 맞서다 죽임을 당해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까닭에 오달제의 무덤에는 평소 허리에 찼던 띠[대]와 주머니[낭장]만 묻혀있다. 대제학을 지내고 말년에 용인 한천동에 살았던 도암 이재의 ‘묘갈’도 눈여겨볼 일이다. 수백 명의 쟁쟁한 제자를 거느렸던 그를 임금인 영조가 질투했다는 재미난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주말에 박물관을 찾아 아이들과 종이와 색연필을 이용한 건식탁본을 체험해 보면 좋을 것이다.

“생거진천, 사후용인”이란 말이 있듯이 용인은 옛날부터 명당으로 이름난 곳이다. 고려의 대학자이자 충신인 포은 정몽주, 유교 이상사회를 꿈꾸었던 정암 조광조,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를 지은 명재상 약천 남구만을 비롯한 명사들의 묘소가 즐비하다. 박물관을 둘러보며 용인이 실학 정신이 깃든 고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반계수록’을 지은 실학의 비조 유형원의 묘소가 있고, 한글 연구서 ‘언문지’의 저자 유희와 ‘태교신기’를 지은 그의 어머니 이사주당을 비롯한 유명 실학자들이 살았다. 고려를 침략한 몽골군의 대장 살리타이를 사살한 김윤휴와 처인성이 있는 고장이다. 처인성에서 신라 말에서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기와와 그릇 등 다양한 생활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발굴한 유물을 박물관에서 제대로 볼 수 없어 아쉬웠다. 학예사가 들려준 말에 따르면 용인에서 발굴된 문화재의 대부분이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공주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고 한다. 속히 찾아와야 할 것이다. 유물은 제자리에 놓일 때 더욱 빛나는 법이다.

윤원규기자
용인시 원삼면 일대에 조성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알리기 위해 WAFER(반도체 기판), 메모리 등을 전시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용인의 과거와 현재, 장래를 꿈꾸다

용인시는 시 승격 25년 만에 110만 인구를 가진 특례시가 되었다. 용인시박물관이 짊어지고 풀어가야 할 사명과 역할이 크게 늘어났다. 용인시의 풍부한 문화유산을 잘 갈무리하여 용인을 역사문화의 도시로 가꾸어 나갈 책임을 박물관이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갈 길이 멀고 급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지난 시간을 차분히 돌아보면서 장래를 설계해야 한다. 용인문화유적전시관을 개관하며 연 기획전이 ‘포은 정몽주-이념과 실천의 합일’(2010)이다. 이어 박물관은 ‘용인서리상반-고려백자’전(2011)과 기증 받은 유물을 중심으로 ‘고려도기’전(2015)을 열었다.

용인과 고려백자의 조합은 어쩐지 낯설다. 그러나 박물관 전시관을 둘러보며 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니 이내 의문이 풀린다. 수준급의 다양한 도자기를 전시실에서 만나고 용인 곳곳에 가마터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용인과 도자기는 여전히 잘 연결되지 않는다. 김경희 박물관운영팀장이나 소지현 학예연구사도 이런 사실이 못내 안타까운 모양이다. “용인이 고려시대부터 도자기를 생산한 고장이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해요. 이런 사실을 알리는 일에 좀 더 집중하고 싶어요.”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120조가 투입되는 ‘용인반도체클러스터’가 올 하반기에 첫 삽을 뜨게 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용인이 전통시대의 첨단산업인 도자기의 주요 산지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뉴스이다. 2012년에 ‘장시의 발달’ 2013년에 ‘전통시장, 용인에 서다’를 잇달아 기획한 데서 짐작하듯이 용인시는 무려 여덟 개의 도시에 둘러싸인 지리적 요충지이다. 동쪽은 이천시, 남쪽은 안성시, 남서쪽은 평택시, 서쪽은 수원시와 화성시, 북서쪽은 성남시와 시흥시, 북쪽은 광주시가 맞닿아 있다. 상설전시실은 용인시가 첨단과 전통이 조화를 이룬 도시라는 사실을 확인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윤원규기자
조선시대 수도 한양과 가까운 지리로 많은 사대부들이 용인에 자리를 잡았다. 사대부들의 방의 모습. 윤원규기자

■박물관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즐거움

그렇다면 ‘용인’이란 지명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2014년의 기획전 ‘조선 태종14년, 용인이 되다’는 지명에 얽힌 역사를 조명하면서 용인시의 정체성을 짚어본 기획이다. 전시실 입구에서 1413년에 용구현과 처인현이 서로 합쳐져서 용인현이 되었다는 사실을 도표로 확인한다. 박물관은 용인의 인물 발굴에 정성을 들였다. 특히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고 조명하는 사업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 ‘용인의 독립운동’(2017), ‘전통을 잇는 사람들’(2018), ‘100년 전 용인, 그날의 함성’(2019)을 통해 민족과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인물을 발굴하여 뜻을 기리는 사업을 펼쳐왔다. 상설전시실은 선사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1전시실),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2전시실) 용인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할미산성, 고려백자요지, 서봉사지 등에서 출토된 유물을 비롯해 용인의 주요 세거성씨 가문의 자료와 일제강점기 사진, 대도시로 성장한 용인의 현대까지 살펴볼 수 있다. 박물관 마당에 조성된 야외전시물도 빠트리지 말고 살펴봐야할 것이다. 수백 수천 년 긴 세월을 땅속에 간직했던 용인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박물관은 초등학생들에게 문화도시 용인의 역사와 가치를 알리기 위해 ‘2021년 용인시박물관 학교연계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프로그램은 박물관의 전시자료를 활용해 ‘지도로 떠나는 용인 역사탐험’과 ‘구석구석 용인 옛 고을’이다. 온라인과 학교를 직접 찾아가는 오프라인을 병행해 10월까지 운영하는데, 사전에 모집된 초등 3~6학년 49개 학급 1천3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할 것이라고 한다.

100년 뒤를 내다보며 큰 밑그림을 그려야 할 때

박물관 곳곳에서 용인시의 정체성을 담고 역사와 문화를 전달하기 위한 수고와 정성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다. 도시의 성장 속도가 너무 빨라 문화유산을 살뜰하게 챙길 여유와 시간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정책적 뒷받침이 부족해 보인다. 후삼국의 혼란을 극복하고 고려를 창업한 태조 왕건의 스승 도선국사(827~898)가 용인 땅을 가리켜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고 했던 말을 떠올린다. 알을 깨고 부활할 병아리는 금계(金鷄)로 성장할 것인데, 용인의 오랜 역사와 풍부한 문화가 금계를 키우는 “둥지”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모이”는 지금 용인시가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특례시로 성장한 110만의 도시에 걸맞은 문화정책을 수립하고 그 중심에 용인시박물관을 두어야 할 것이다. 100년 앞을 내다보며 큰 밑그림을 그리는 정책적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윤원규기자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돌에 새긴 사대부의 정신’ 전시. 용인에는 200여개에 이르는 사대부 무덤이 있으며, 그 중 39건이 도∙시 문화재로 지정됐는데 이번 전시는 그간 수집해 온 사대부 묘비의 탁본 자료를 소개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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