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삶의 모든 ‘예술의 순간’

“난 지금도 그때 두이탈리아 여자들이 무엇을 노래했는지 모른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노래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래서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 비천한 곳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높고 먼 곳으로부터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우리가 갇혀 있는 삭막한 새장의 담벼락을 무너뜨리는 것 같았다. 그 짧은 순간, 쇼생크에 있는 우리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영화 <쇼생크탈출>의 명대사다.

쇼생크의 이 경험적 순간은 인간의 영혼이 휩쓸려가는 확실한 절망의 시간에서 불확실한 자유의 시간으로 전환되는 찰나적 시간이다. 아우구스티누스 등 많은 철학자는 이 순간을 ‘창조적 시작’으로 표현했다. 예술은 그 시작의 순간에 등불을 켰다. 필자는 이를 ‘예술의 순간’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꽉 차 있던 것이 ‘펑’하고 터지는 순간. 레드는 끝내 빛과 자유를 얻었다.

‘예술의 순간’의 경험을 얻기 위해 모든 인간이 쇼생크 사람들과 같은 불행을 지불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장면이 지금껏 회자되는 것은 예술이 삶의 맥락과 만났을 때 어떻게 완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예술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창조적 시작을 돕는다. 스펙터클한 무대, 장대한 세레머니 등 규모의 미학으로도 오고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들의 가치를 통해서도 온다. 그러나 대개는 잔잔한 일상에 잠재한다. 중요한 순간은 사실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할 때가 많다. 우리 내면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휘발했던 유년의 기억과 만날 때, 권태로 차곡차곡 쌓여가는 일상에, 고단한 삶 속 차마 흘리지 못하는 눈물에 있다. 필자의 동료 B는 힘겨웠던 유학생활을 끝내고 드디어 고국으로 돌아오는 날 ‘예술의 순간’을 경험했다. 공항을 향해 가던 길의 다리 위에서 무심코 뒤를 돌아봤고 단지 석양이 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도시 곳곳에 랜덤으로 엉켜 있는 자신의 시간이 마구 달려와 안겼다. ‘아, 내가 그래도 이 도시를 사랑했구나’ 라고 깨닫는 순간, 이 경험은 B에게 자유의 시가 된다. 이런 순간은 예측 가능한 시간에 오기도 하고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예술의 목적지는 ‘지금 여기 이 순간’이다. 우리가 ‘예술의 순간’을 경험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것은 바로 ‘모든 시공간에 존재하는 바로 나 자신’이다. “이런 시작은 어디에나 있다. 언제 어디에나 준비되어 있다” - 한나 아렌트

주홍미 경기문화재단 문화예술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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