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는 입양가정] 우리는 행복한, 보통의 가족... 남들과 달라 보이나요?

가정의 달 5월의 수많은 기념일 속 11일은 ‘입양의 날’로 제정됐다. ‘한 가정이 한 아동을 입양해 새로운 가정(1+1)으로 거듭나자’는 취지다.

국내에 건강한 입양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2005년부터 이어진 날이지만 아직 입양가정에 대한 편견은 사라지지 못하고 있다. 핏줄 중시 문화가 여전한 탓이다. 특히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정인이 학대 사망 사건’ 이후 아동학대보다 입양가정에 사건 초점이 맞춰지며 편견은 더욱 깊어졌다. 그릇된 선입견에 멍들고 있는 입양가정의 고충과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조명한다.

 

“우리에겐 ‘가슴으로 낳았다’는 말도 상처가 돼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처럼 김영훈씨(53ㆍ가명) 부부에게도 십여년만에 변화가 생겼다. 정든 고향 수원을 쫓기듯 떠나게 된 것이다.

발단은 지난해 겨울 셋째딸이 감기에 걸리면서다. 2018년 당시 여덟살이던 딸을 공개 입양한 영훈씨 부부는 이웃과 만나 아이들 학습 정보를 공유했다. 그때 아이가 연신 기침을 해댔다. 주위는 일순간 얼어붙었다.

영훈씨는 “아이가 기침할 때마다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며 “처음에는 코로나19 걱정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애써 합리화했지만 주변에서 ‘나머지 애들은 멀쩡한데 왜 (입양한) 셋째만 감기에 걸렸는지 모르겠다’는 등 수상한 뒷얘기가 오간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고 말했다.

김씨 부부에겐 셋째 말고도 비공개로 입양한 한 명의 입양아(2020년 당시 3세)가 더 있다. 항간에선 막내딸의 존재를 두고 뜬소문이 일기도 했는데, 본격적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영훈씨는 “갑자기 신생아가 아닌 애(넷째)가 함께 다니는 걸 보고 ‘누구냐’, ‘언제 임신을 했었냐’고 묻거나 ‘첫째 둘째도 혹시(입양했냐)’고 떠보는 사람이 많았다”며 “막내가 불량식품을 먹겠다고 떼를 쓰면 안 된다고 말리다가도 괜히 남 눈치에 ‘줘야 하나’ 싶을 정도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입양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는 그는 “공개 입양만큼은 오판이었다”고 평했다. 영훈씨는 “아이들이 자랄수록 피해가 생길 수 있단 생각에 결국 입양 소식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올 수밖에 없었다”면서 지금도 여섯 가족의 비밀을 감춘 채 살고 있다.

이빛나씨(53ㆍ가명)도 영훈씨와 같은 고민을 했다. 경기동부권에 거주하는 빛나씨는 몇 년 전까지 지역 입양단체의 회장을 맡았다. 본인의 자녀 중에도 막내가 입양아다. 누구보다 입양에 대한 선입견을 깨려 노력했지만 현실적 한계가 느끼고 회장직을 내려놓았다는 그다. 결정적 계기는 ‘정인이 사망 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로 본인의 아이가 넘어져 멍이 들어도 ‘입양 부모 탓’이 된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빛나씨는 “부모가 아이를 직접 낳았는지 가슴으로 낳았는지 중요한 게 아니라 가족이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가 중요하다”며 “단지 ‘입양아’, ‘입양가정’이라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입양 부모들의 한숨이 늘고 있다. 신체검사, 정신 감정, 재산 검증 등 꼼꼼한 절차를 거쳐 법원으로부터 ‘부모다운 부모’ 승인이 난 뒤 입양이 결정됨에도 잠재적 아동 학대자라는 인식에선 벗어날 수 없어서다.

홀트아동복지회 한 지역상담소 관계자는 “입양가족들은 애가 마음에 안 들면 때리지 말고 입양을 취소하라거나, 얼마나 하자가 있으면 애를 입양하느냐는 등 별별 추문을 다 들으며 살고 있다”며 “입양가족도 평범한 가족인 만큼 잘못된 사회적 분위기가 하루빨리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입양가족. 사진=윤원규기자
입양가족. 사진=윤원규기자

[해마다 줄고 있는 국내 입양]

국내 입양 아동수가 매년 줄고 있다. 입양에 대한 편견과 인식부족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에 만연, 입양문화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인이 사건’에 이어 최근 두살배기 아동의 학대사건이 입양가정에서 발생했다는 점이 유독 부각돼 입양에 대한 편견을 키우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는 입양가정을 출산가정과 분리해 관리 대상으로 잣대를 들이대는 것으로, 출산과 입양에 차별을 두는 사회적 격리행위라는 견해다.

입양관련 전문가들은 아동학대에 대한 전방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가해유형으로 입양가정을 별도로 구분해 인식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입양과 출산 다르지 않아…행정조치 동등하게

10일 보건복지부와 경기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경기도 등 지방정부에 ‘2021년 입양실무매뉴얼 개정사항’을 전달했다. 개정사항에서 눈에 띄는 점은 사후서비스 부분이 강화됐다는 것이다.

사후관리보고서 작성의 경우 그동안 작성 횟수를 ‘연간 4회 이상 작성하고, 4회 중 최소 2회는 가정방문’을 하도록 했다. 하지만 올해 수정안은 사후관리보고서 작성횟수를 연간 6회 이상 작성하고, 6회의 사후관리 중 최소 3회는 가정방문을 하도록 강화했다. 또 가정방문 이외에 가정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대면 상담하고, 사후관리 진행 후 10일 이내에 사후관리 보고서 작성을 제시했다. 특히 사후관리는 양친과 아동 모두 함께 만나서 상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매뉴얼을 개정했다.

아동전문가들은 이 같은 행정조치에 대해 입양 가정에 대한 과도한 조치이자 차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익중 한국아동복지학회장은 “사실상 입양과 출산이 다를 바 없는데 유독 입양에 대해서만은 정부 기관들이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며 “아동학대 우려로 전수조사나 사후관리를 한다면 입양가정뿐만 아니라 신생아를 출산한 가정에서도 동등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동학대 조사에 상처 받는 입양 가정

“우리 아이가 왜 학대 위기 아동인가요.” 김포시에 거주하는 박모씨(57) 가족은 고민 끝에 입양을 결심했다. 2년간의 교육을 거쳐 아이를 입양한 박씨 부부는 최근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행정복지센터로부터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차 가정을 방문하겠다’는 통보를 받으면서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위기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e아동행복지원사업’에 일부 입양 가정 아동을 포함시키면서 입양 부모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e아동행복지원사업’은 사회보장 빅데이터를 활용해 기초생활수급자, 장기결석, 영유아 예방접종 미실시, 각종 아동수당 미신청 등 총 43종의 정보 연계로 조사 대상을 선별한다. 읍ㆍ면ㆍ동 아동담당 공무원은 선별된 아동의 가정을 직접 방문해 양육환경을 확인, 양육환경 개선을 위해 필요한 서비스를 지원한다. 그러나 아동 학대 정황을 조기 발굴하기 위한 방문 조사에 입양가정 아동이 지목되면서 입양 부모들은 부정확한 데이터와 편견 탓에 사회적 낙인을 우려하고 있다.

박씨는 “우리 가족이 잠재적 아동학대자가 된 것 같아 일상 생활이 위축되고 있다”며 “최근 정인이 사건도 매우 이례적인 사건일 정도로 입양 가족에서 아동학대가 많지 않은데 모든 입양가족이 잠재적으로 아동을 학대할 수 있다는 낙인이 생기면 입양문화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친부모 대비 입양가정 아동학대는 ‘미비’

‘정인이 사건’ 이후 입양가정에 대한 편견이 커지고 있지만 실제 아동학대 사례를 보면 입양가정과의 관련성은 친생부모 대비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19 아동학대 주요통계’를 보면 2019년 기준 아동학대행위자의 비율은 ▲친생부모 72% ▲대리양육자 16% ▲친인척 4.4% ▲계부모 3% ▲입양부모 0.3% 등이었다. 입양부모의 아동학대 행위는 친생부모와 비교할 때 70% 이상 차이를 보였다. 또한 2018~2019년 국내 아동학대 사망 아동은 70명인데, 이중 입양가족 사이에서 숨진 아동은 1명뿐이었다.

전문가들은 ‘정인이 사건’이나 이번 ‘2살 여아 학대사건’이 아동학대보다 입양가정에 초점이 맞춰지며 사회적 편견 때문에 입양이 위축될까 우려했다. 가뜩이나 국내 입양 아동은 줄어드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기도의 입양아동 현황은 지난 2017년 50명(전국의 10.8%), 2018년 50명(13.2%), 2019년 48명(12.4%) 등으로 멈춰서있다. 전국적으로는 2017년 465명에서 2018년 378명, 2019년 387명 등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정영란 ㈔한국입양홍보회 팀장은 “최근 들어 과도한 사후관리와 사회적 편견 등의 영향으로 입양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입양을 희망하려는 가족들도 입양특례법이 의미 없이 계속 바뀌고 있어 우려하고 있다”며 “올해 국회에서 우리 홍보회에 전달된 일부개정안만 10여개다. 입양가족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이 많은데, 오히려 입양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작업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뷰] 김지영 전국입양가족연대 사무국장 "입양, 제도개선 통해 사회적 편견 없애야"

“지금부터라도 인식개선 교육과 제도개선을 통해 입양에 대한 문화를 바꿔나가야 합니다”

김지영 전국입양가족연대 사무국장은 10일 경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입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줄이기 위해서는 인식개선과 편견, 제도의 괴리감 해소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입양은 가정을 이루는 하나의 방법일 뿐, 입양 가정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차별된 시선이라고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은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입양 가정에게 ‘대단하다’, ‘존경스럽다’ 등의 말을 건넨다”라며 “1인 가정, 조손 가정, 다문화 가정과 같이 입양은 가족을 이루는 한 방법일 뿐이다. 입양 가족이 특별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편견에 사로잡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편견을 없애려면 입양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김 사무국장은 현 제도가 입양에 대한 시선을 저해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발생한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보건복지부는 입양기관이 입양신고일로부터 1년 이내 가정을 방문하는 횟수를 4회에서 6회로 늘리도록 했다. 이 같은 지침이 입양문화를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그는 “‘정인이 사건’은 입양가정의 문제가 아닌 아동학대에 대한 문제다. 당시 학대 정황이 있었지만 이를 방치한 기관이 잘못된 것”이라며 “기관의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아닌 입양 부모와 가정을 규제하는 것은 입양 문화를 소극적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입양 문화가 위축되고 입양과 입양가정에 대한 편견이 생길수록 입양을 가야 할 아이들이 가정으로 가지 못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모든 아이들은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며 입양의 필요성에 대해 거듭 강조한 김 사무국장은 “어떤 아이들은 편식할 수도, 잠을 늦게 잘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을 허용하고 이해하고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곳이 가정”이라며 “아이를 위한 입양 가정이 될 수 있도록 하루빨리 아이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정부 차원의 제도개선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독자소통팀=홍완식·최현호·이연우·이정민·김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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