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잃어버린 거울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거리가 존재한다. 간절한 바람과 실제도 마찬가지이다. 그 거리에 대한 이해가 그 사회가 가진 탄력성이라 할 수 있다. 지난 몇 해를 돌이켜보건대 마치 해방 직후의 양상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게 할 정도로 이념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이념을 앞서는 것은 과연 없는가? 있다. 삶이다. 이념은 물론 그 무엇도 삶을 능가하는 것은 없다.

가히 폭발적으로 감소하는 인구문제는 우리의 삶의 양태를 근간부터 흔들 것이며, 교육과 관련된 문제는 과연 이 땅은 살만한 곳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그러나 삶의 양태와 이곳은 살만한 곳인가 하는 물음을 바로 이념의 문제로 치환했을 때 사회의 이분화는 급속도로 진행될 것이며 갈등은 조장될 것이다. 모든 문제를 진보와 보수로 치환해서 바라본다면 이 세계의 반은 허름하거나 사악하기 짝이 없는 형국으로 보일 터다.

사실 이러한 이분화 관점의 가장 큰 맹점은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데 있다.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싸워야 할 적이 더러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잊게 한다. 이것은 무서운 망각으로 우리를 이끈다. 자신은 늘 정의와 선의 편에 서 있다는 착각이 그것이다. 그것을 조장해 온 것이 언론이다. 같은 사안에 대해 일관되게 정반대의 입장을 고수하는 언론을 보며 차라리 상식적 사고가 더 건전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곤 한다. 사안 별로 다른 평가를 받기에 충분한 사실조차 관성의 인식을 그대로 적용해 보고 싶은 데로 보고 듣고 싶은 데로 듣는다. 그 관성의 인식이 이기적 정치성에 기인해 있다면 이는 극히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제도와 말로써 쉽게 극복될 수 없는 거리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가 말라 비틀어진 이념의 문제로부터 탄력적인 사고로 우리를 이끌 것이다. 행복한 삶을 넘어서 의제는 이 세상에 없어 보인다.

우대식 시인ㆍ경기민예총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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