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수지풍중초부립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도 어느덧 중반으로 치닫고 있다. 저만치 6월은 한 해의 전환점이라 손짓하고 있고, 무심한 듯하지만 계절은 언제나 그렇듯 우리 발 앞에 자신의 그림자를 여지없이 드리운다.

자연은 물 흐르듯 한없이 평온함을 안겨주는 것 같지만 때론 비바람과 눈보라를 몰아치며 고통과 고난을 강요한다. 순환을 위해 받아들여야 할 희비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힘으로 대변되는 권력층과 서민들이 나눠지는 고통의 무게가 서로 다르게 분담된다. 예컨대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9개(미술, 음악, 문인, 사진, 연예, 무용, 연극, 국악, 무용협회) 단체의 경우도 최근 몇 년간 지방보조금을 매년 20~30%를 삭감 받아온 바 있다. 조직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한 배를 타야 한다는 것에 대해 예술인들이 기꺼이 뜻을 같이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2021년에는 8개 협회가 그동안 지원받던 지방보조금을 무더기로 지원받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예술계의 상황이 악화일로인 점을 감안할 때 지원이 전무한 고통분담의 종용은 어려운 예술계의 풍토를 더욱 어렵고 척박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최소한의 생명연장창구마저 단절한 상태에서 예술계와의 소통과 지역예술문화정책은 어떻게 발전시키고 보급해 나갈지 행정의 향후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초상지풍필언’(草上之風必偃). 논어(論語)의 ‘안연’(顔淵)편에 나오는 명구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된다는 말이다. 불어오는 바람이 있어 잠시 그 바람을 맞으며 눕기는 하다만 그 바람이 가져올 지역 예술문화의 파행과 퇴보에 대한 책임 소재는 명쾌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위 구절에 ‘수지풍중초부립’(誰知風中草復立)이라는 대구가 있다. 해석해보면 ‘너는 모르지?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난다’는 정도다. 서민들을 위한 그 바람이 덕화(德化)하기 위한 것이 아닌 위선과 가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풍자적으로 표현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역예술계에 부는 현실바람을 거스를 수 있는 예술인은 전무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인 그들은 바람결에 몸을 눕히며 ‘수지풍중초부립’(誰知風中草復立)만을 암송할 뿐이다.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지역예술계에도 단비처럼 뿌려져 그 꽃과 잎, 줄기의 튼실함과 양분 넘치는 과실을 수확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할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바람인지 이상과 현실의 온도차이를 실감하며 초여름 녹음을 맞는 것이 씁쓸하기만 하다.

이영길 수원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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